[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집으로

입력 2008-12-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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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는사랑…외할머니그립습니다
어릴 땐 그렇게 새우깡을 사달라고 괴롭혔답니다. 둘 째를 가져 배부른 엄마는 종종 외할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밤만 되면 보채는 날 달래는 것은 외할머니 차지. 새우깡만 보면 울음을 뚝 그치는 절 위해 외할머니는 밤길을 걸어 구멍가게를 찾아나섰답니다. 가끔 전 심술도 부렸습니다. 할머니는 주무실 때 코를 골았는데, 공부에 방해된다고 확 코를 막아버린 적도 있습니다. 동생과 몰래 코고는 것을 녹음해 들려줘 외할머니를 당황하게 한 것도 생각나네요. 영화 ‘집으로’의 상우는 처음엔 외할머니라 그저 싫습니다. 먼지 폴폴 나는 시골길을 걸어 만난 외할머니. 머리는 하얗고 등은 꼬부라졌습니다. 그 뿐인가요. 말도 잘 안 통하니 답답했을 법도 합니다. ‘후라이드’ 대신 ‘닭백숙’을 해오는 할머니가 얼마나 짜증났을까요? 우리 외할머닌 고왔답니다. 7남매를 홀로 키웠지만, 미인이라 그런지 귀티가 났습니다. 어린 맘에도 외할머니가 자랑스러웠죠. 외할머니도 영특한 외손녀 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아홉 살 때, 전 깡패한테 돈을 뜯긴 적이 있습니다. 비 오고 천둥 치는 날, 면도칼을 들이댄 깡패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서움에 떠는 저를 외할머니는 안고 주무셨습니다. 손자가 잘 때까지 기다려 이불을 덮어주던 상우 할머니와 똑같은 마음이었겠죠. 한참이나 혼자 다니지 못한 제 손을 잡고 학교도 데려다 주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이면 숨어버리는 날 꼭 안아주던 할머니. 눈에 선합니다. ‘집으로’의 할머니 연세도 꽤 된 것 같았는데, 지금도 살아계신지 궁금합니다. 우리 외할머니는 여든이 넘은 지금,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많이 아프십니다. 손녀가 방송사 아나운서된 걸 좋아하던 외할머니에게 ‘가요무대’나 보여드릴까 서울로 오시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자마자 급체로 입원했다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요무대’는 커녕 급히 수술을 받았죠. 외할머니는 수술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모릅니다. 수술이 잘 된 줄 알고, 자꾸 체해 힘들다고만 하십니다. 가끔 병원에 가는 것도. 그저 연세가 많아서인 줄만 아십니다. 제겐 삼십대 중반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은 아버지도 있습니다. 작은 아버지가 안타까워, 나이라도 많았다면 덜 슬플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죠. 하지만 여든 넘긴 외할머니의 투병도 가슴이 아픕니다. 편하게 살다 가셨으면 했는데. 가슴이 저릿해 옵니다. 이번 주말, 전 외할머니를 만나러 ‘집으로’ 갑니다. 응급실에 또 가셨다는 말을 듣고 더 늦출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영화 속 상우와 할머니처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외할머니가 의사의 말보다 꼭 오래 사시리라 믿습니다. 이번에 외할머니를 만나면 일곱 살 철없는 상우로 돌아가 꼭 말하려 합니다. 어린 나를 보듬어 주던 당신이 정말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끄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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