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프로농구창원LG훈련장을가다

입력 2009-0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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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46)을 모델로 한 농구화를 신고, 샤킬 오닐(37·피닉스 선즈)의 별명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등교하던 시절이 있었다. 농구를 잘하는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에이스에게는 ‘에어(Air)’, 힘 좋은 친구들에게는 ‘바클리’라는 별명이 붙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이 서울의 모 농구 명문 고교 2진 선수들과 펼치는 경기를 볼 기회가 있었다. ‘에어’와 ‘바클리’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슛 기회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농구선수 출신의 체육선생님은 “이제 겉멋 부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훈계했다. “농구? 선수들과 안 뛰어봤으면 말을 하지마.” 참패하고 돌아온 친구들은 무용담처럼 그 날의 경기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십수 년. 먼지가 수북이 쌓인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바스켓볼 키드의 추억. 지난달 30일, 서울 방이동의 창원 LG 세이커스의 훈련장을 찾았다. 접었다 폈다 스트레칭도 힘든마당에… 현주엽은 한다리로 100kg 번쩍번쩍 ○마음껏 굴리겠습니다 보름 전부터 LG 김성기 사무국장은 “몸을 만드셔야 할 것”이라고 겁을 줬다. 하지만 온갖 송년 모임에 쫓기는 직장인이 연말에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유투 성공률을 급작스럽게 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감독님이 마음껏 굴리라고 하시던데요.” 김대의(43) 코치의 미소가 이날만큼은 인자해보이지 않았다. 오후 2시. 점심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남택민(33) 트레이너가 선수들의 테이핑을 책임진다. 테이핑은 부상방지용. 근육을 압박하면 점프력이 상승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테이프를 친친 감자 꼭 미라가 되는 기분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깬 선수들에게 이것저것 캐묻자 오페라(26) 트레이너가 한 마디를 건넸다. “잠깐 따라 나오세요.” ‘큰 실수라도 한 것인가?’ 오 트레이너는 “감독님의 특별지시로 스트레칭을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된다. 이리 접고, 저리 접고. 온 몸이 도화지. 고참 선수나 일부 유연성이 떨어지는 선수는 훈련 전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스트레칭을 한다. 한편에서는 현주엽(34)이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무릎이 좋지 않은 현주엽은 훈련 전 레그 익스텐션으로 대퇴부근육을 단련시킨다. 일종의 보강운동으로 부상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모 여자하키 선수는 100kg으로 레그 익스텐션을 한다”고 하자, 현주엽이 대번에 무게를 100kg으로 올렸다. 한쪽 다리만으로도 100kg이 거뜬하다. 웬만한 여성의 허리둘레만한 허벅지가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에 기가 죽었다. 뱅크 슛 넣었더니 클린 슛 쏠 차례… 전술은 들어도 도대체 무슨소린지 ○이번에는 통슛 할 차례였는데… 유니폼을 받았다. 등 뒤에 새겨진 이름 석자를 보니 뿌듯하다. 배번은 기자의 이름을 따 02번. “오늘은 존댓말 없습니다.” 강을준(44) 감독이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세이커스에게 ‘일일선수’를 소개시켰다. 짝짝짝, 박수소리와 함께 연습시작. 다양한 스텝으로 코트의 절반을 가로지르며 몸을 푼다. 아이반 존슨(25)의 뒤에서 무작정 따라하기. “하프라인까지 오셔야죠. 왜 중간에 그만둡니까?” 설렁설렁 꾀를 피우다 김대의 코치에게 혼이 났다. 벌써 구슬땀이 송골송골. “Hey, girl. sexy girl.” 존슨이 아주 알아듣기 쉬운 말로, 조상현(33)에게 장난을 건다. 내성적이라던 소문과는 판이한 모습. 모 선수는 “어제 여자친구가 입국해 오늘 존슨의 기분이 최고”라고 했다. 이 틈을 타 존슨과 하이파이브. 슛 연습. 반대편 코트로 전력질주한 뒤 패스를 받아 미들슛을 던진다. “빽판(뱅크 슛)이요.” 백보드는 맞췄지만 공은 엉뚱한 곳으로 튄다. 4번의 시도 가운데 겨우 성공. 쾌재를 부르는 순간, 돌아오는 선수들의 대답. “이번에는 통슛(클린 슛)할 차례였어요.” 전술훈련. 4명이 짝을 이뤄 반대편 코트로 넘어가 공격하고, 골을 성공시킨 이후에는 한 명이 빠진 상태에서 3명이 수비를 펼친다. 아웃넘버 상황에서의 공격이다. 박규현(35), 브랜든 크럼프(27), 이지운(24)과 한 팀. “제가 컷인을 하면요, 형이 반대로 돌아 나오면서…….” 이지운의 귀띔에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모르겠다. 웬만하면 ‘손님’에게 기회를 주려는 박규현의 배려에도 슛은 야속하게 링을 외면한다. 슛보다는 패스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클럼프에게 공을 주자 호쾌한 슬램덩크. “Good pass.” 클럼프의 나지막한 한 마디에 사기가 올랐다. 하지만 수비시에는 빠져있기 일쑤. 넋 놓고 코트를 응시하고 있자 현주엽이 어깨를 툭 쳤다. “뭐해요. 소리라도 질러야지.” “파이팅! 굿!” 수비는 우렁찬 목소리로 대신했다. 그래도 ‘10만원 빵’10점내기 결정적 한방, 골맛에 손맛까지… 센스쟁이 현주엽 생큐! ○옆으로 비켜주는 현주엽의 센스, 필살의 레이업 슛 잠시의 휴식기. 선수 1인당 2개의 자유투를 던진다. 모두들 쏙쏙. 하지만 기자는 2개 모두 실패. “뛰세요.” 오성식(39) 코치가 뜻 모를 한 마디를 던졌다. 1개를 실패할 때마다 벌칙으로 코트 끝까지 1회 전력질주. 헉헉. 집중력이 절로 생긴다. 잘 넣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현주엽의 대답. “지금, 저도 잘 안 들어가는데,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에요.” 다음 기회에는 어렵사리 2개 중 1개를 성공시켰다.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를 이틀 앞두고 강을준 감독이 특히 신경 쓴 것은 서장훈의 수비법과 2-3 지역방어. 강 감독의 특별지도 후 선수들이 홍팀과 백팀으로 나뉘었다. 수비를 잘해야 점수를 얻는 경기다. 2-3 지역방어만 설수 있고, 상대팀의 슛 실패나 턴 오버를 유도하면 1점을 얻는다. 10점을 먼저 내는 팀 승리. 1인당 1만원씩 내기까지 걸렸다. “백팀으로 가십시오.” “감독님, 저는 붉은색 유니폼밖에 안받았는데….” 뒤집어 입으니 흰색 유니폼. 조상현, 전형수(31), 기승호(24), 송창무(27), 존슨 등과 한 팀이 됐다. 수비시에는 빠지고 공격시에만 히든카드(?)로 투입. 큰 파이팅 소리가 어필을 했는지, 강 감독이 교체사인을 냈다. 전형수가 돌파 후 공을 넘겼다. 순간, 텅 빈 링이 보였다. 하지만 골밑을 향해 달리자 두 개의 큰 그림자가 나타났다. 클럼프와 현주엽이었다. 블로킹 당할까봐 조금 더 빠르게 슛을 던지려는 찰나, 마치 서장훈의 1만 득점 때처럼 ‘센스쟁이’ 현주엽이 옆으로 쓱 비켜섰다. 처음이자 마지막 득점. 박규현이 장난스럽게 배를 툭 쳤다. “그걸 넣어요? 10만원 빵인데!” 결국 10-8 승리. 현금까지 챙겨 발걸음이 가벼웠다. 1일, 전자랜드와의 새해 첫 경기. 내기로 단련된 LG의 변형 지역방어는 빛을 발했다. 결국 94-82로 LG의 승리. 강 감독은 “역시 농구는 수비에서 승부가 갈린다”며 웃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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