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냉정과열정사이

입력 2009-02-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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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생각했던 게 맞아. 나, 걔 때문에 그 영화 올려놨던 거야. 그 아이가 ‘냉정과 열정 사이’를 좋아했단 이유만으로. 혼자서 두오모 성당을 찾았어. 이제는 안 지 꽤 된, 참 아끼는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가끔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죠. 6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 동생은 첫사랑 중이었습니다. 얼핏 ‘오렌지’처럼 보이는 그 애 마음 속에 순수한 감정이 싹트고 있는 줄 전 몰랐습니다. 하지만 가끔, 좋아하는 그 아이가 탤런트 지망생이라면서 정말 예쁘고 착해 지나가듯 자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조용히 헤어졌죠. 그 아이가 좋아했던 여자를 TV에서 보게 된 후에도, 동생이 그렇게까지 가슴 저릿한 줄 몰랐습니다. 늘 농담을 늘어놓는 ‘싱거운’ 아이였거든요. 그러다 동생 홈페이지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에 나오는 글귀를 발견했죠. ‘너의 고독한 눈동자에 내가 다시 비치게 된다면’으로 끝나는, 준세이가 아오이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 사랑이 꼭 즐거운 건 아니란 걸 알게 됐을 때, 날 웃게 한 사람이 날 울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꼭 그 맘 때 저 역시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 푹 빠져 있었죠. 영화가 개봉했을 때도 제일 먼저 극장으로 달려간 저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동생의 홈페이지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발견했을 때 그 아이의 첫사랑도, 나처럼 아련하고 쓸쓸하게 기억되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물어봤죠. “그 영화… 첫사랑 때문이지?” 아니라더니 몇 개월쯤 후에 고백하더군요. 그 여자애가 좋아하던 영화였다고. 헤어진 다음에 혼자 두오모 성당을 찾아갔다고. 사랑한다는 건 그렇게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게 하는 거라고. 이제 제법 유명해진 그녀를 보면서 우리 만남은 결국 끝난 걸까 생각한다고. 전 그 때 깨달았습니다. ‘냉정’해 보이는 겉만 보고 ‘쟤가 무슨 사랑을 알겠어?’라고 무심코 생각했지만 누구의 가슴 속에나 ‘열정’ 하나쯤 살아 숨쉽니다. 건조체의 뉴스 속에 하루종일 파묻혀 있는 저도 촉촉한 감성은 메마르지 않은 것처럼. 비록 원작의 가냘픈 아오이 역할을 너무 훤칠한 진혜림이 맡은 게 불만이었지만 잊혀진 감성을 살아나게 하는 이 영화, 다시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평생을 함께 할 ‘열정의 남자’와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찾아보길 소망합니다. ps. 아무래도 맘에 걸려 그 동생에게 신문에 네 얘길 써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 지금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같은 동네에 준세이 역할을 맡은 배우가 산다는군요. 영화도 영화지만 꼭 한국 아나운서의 안부를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지요.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끼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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