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빈의언제나영화처럼]라디오스타

입력 2009-01-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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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은 왕년의 스타, 최곤과 헌신적인 매니저 박민수의 우정에 감동을 받았겠죠? 제가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좀 달랐습니다. 영화의 무대가 된 방송국은 영월 KBS인데요. 강원도인 데다 건물까지 비슷해서인지, 제겐 2005년 강릉 KBS에서 보낸 1년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라디오 스타’를 볼 때 제가 꼭 ‘최곤’인 것 같은 착각에 빠졌죠. 게다가 전 ‘FM음악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거든요. 최곤이 동네 사람들의 대소사를 쭉 꿰고 있는 것처럼, 저도 그 땐 청취자들의 생활을 쭉 꿰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매일처럼 사연을 올리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11시에만 라디오를 들으며 땡땡이 친다던 분. 택배 아르바이트를 한다던 첫 전화 연결의 주인공 ‘절대미남’님. 집주인이 방값을 돌려주지 않는다던 분. 택시에서 ‘목소리’로 나를 알아보았던 기사님은 ‘수빈씬 멋진 진행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적도 있죠. 모두 잊을 수 없습니다. 영화에는 강 PD가 등장하지만, 지방에선 자주 진행자가 PD까지 도맡습니다. 저도 그랬죠. 음악은 어떤 걸 틀까, 코너는 어떻게 바꿀까…. 서울 라디오 프로부터 지방 방송, 국군 방송까지 두루 섭렵하며 연구했던 초년병 시절이 이젠 아련하고 그립기까지 합니다. 그때 저를 도와주었던 작가 현숙씨는 지금도 잘 있을까요? 실수 연발이던 절 예쁘게 봐주셨던 엔지니어 이창수 감독님은 건강하실까요? 우리 코너에 출연했던 식구들도 가끔 그 라디오가 그리울까요? 강원도엔 폭설이 내렸다는데, 청취자들은 괜찮을까요? 최곤에게 매니저가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 그 때 가끔 투닥거려도 감싸주는 분들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전 입사할 때 ‘목소리가 예쁘지 않아 라디오와는 맞지 않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만 방송을 했다면 느낄 수 없었던 감수성을, 강릉에서 DJ를 하며 채웠습니다. 거친 최곤이 마이크 앞에서 만큼은 인간미를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억지 설정이 아니에요. 마지막 방송하던 날, 저는 울었습니다. 언젠간 라디오로 꼭 돌아오겠다고도 다짐했죠. 오랜 바람 때문일까요? 이번에 89.1MHz ‘상쾌한 아침’ 진행을 맡게 됐습니다. 누구나 뉴스 앵커가 된 것을 축하했지만, 저는 첫사랑 같은 DJ를 맡은 것 역시 기뻤답니다. 특히 강릉 청취자들이 ‘상쾌한 아침’까지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라디오는 유명세와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행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매체입니다. 세상에서 가볍게 떠드는 관심이 아니라 정말 내 사람을 만나는 과정입니다. 요새는 유명인이 나오는 시끌벅적한 라디오도 늘었지만, 라디오 마이크 앞에서 만큼은 떨림을 간직한, 소박한 나로 돌아가 작은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싶습니다. 강릉에서처럼 늘 작은 라디오 스타가 되고 싶었던 나. 이젠.... 돌아갈 수 있겠죠? 그 때 그 마음으로. 조수빈 꿈많은 KBS 아나운서. 영화 프로 진행 이후 영화를 보고 삶을 돌아보는 게 너무 좋아 끼적이기 시작함. 영화에 중독된 지금, 영화 음악 프로그램이나 영화 관련 일에 참여해보고 싶은 욕심쟁이, 우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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