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도 싫고 욕을 하고 듣는 것도 싫다. (남을)미워하지 않으려 한다.”
박희순이 배우가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덕분이었는지 모른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평범했던 소년이 학예회 연극 무대 출연을 자청하고 나섰고 친구들은 놀랐다. 자라면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12일 개봉한 영화 ‘작전’ 홍보를 위해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청심환을 먹었을까.
어릴 적 막연한 꿈이었던-정작 그는 그 이유를 모른다-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 혹은 카메라 앞에 나서 자신을 드러내고 발산하는 것에 박희순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했다.
박희순은 무대 위와 카메라 앞에서 만큼은 온전하게 관객을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게 하는 힘을 지닌 배우다. 그는 그렇게 그런 카타르시스와 희열을 즐길 줄 안다. 적어도 무대 위와 카메라 앞에서는 말이다.
주가조작을 통해 불법적인 이득을 취하는 주식 작전세력의 이야기를 통해 돈과 물질에 대한 천박하고도 허망한 욕망을 그린 영화 ‘작전’도 그의 놀이터이자 안방이다.
그 속에서 그는 조폭 출신의 금융사업가로 위장하고 산다. 수백억원의 작전을 벌이며 가장 비열한 욕망을 그려내는 그는 “특권층이길 갈망하는 사람들의 허세,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의 캐릭터는 탁월하고 적확한 애드리브를 거친 유머로서도 관객의 시선을 모은다. 박희순은“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지휘하는 역할인데 그들을 리드하면서 생기는 틈새를 잘 활용하면 유머가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 유머 감각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친한 사람들 사이에선 그럴지도 모른다. 툭 한 번 건드리면 웃음을 자아낼 극적인 것, 하지만 그나마 술 한 잔 마셔야 나올 거다. 날 드러내 보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쑥스럽다.”
- 그런 성격으로 어떻게 배우가 됐나.
“나도 신기하다. 평소 내가 못하는 걸 하니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 TV 예능프로그램에도 잘 적응하는 것 같더라.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죽을 뻔했다. 조그만 방에 카메라 10대를 설치하고 몰아넣은 뒤, ‘웃겨봐’ 하는 것 같았다. 반응이 좋았던지 인터넷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이젠 못하겠다”.(웃음)
- ‘작전’속 슈트 차림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
“2500만원짜리 맞춤옷이다. 고가의 시계도 찼다. 3∼4개월 동안 연기를 하려 착용하고 나니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무대 위 내 모습일 뿐이다. 평소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다닌다. 현장에서 분장하고 의상을 입으니 스태프들이 날 못알아봤다. 재미있었다.”
- 당신을 배우로서 만들어준 건 아무래도 연극 무대와 극단 목화가 아닐까.
“극단 목화에서 12년 동안 무대에 섰다. 일부러 겸손하려는 게 아니라 극단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것 같다. 잘 된 일이 있으면 날 겸손하게 하는 일이 꼭 생기곤 했다. 목화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오태석 선생은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분이다. 지난해 말 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휴대전화도 없는 분이 극단 후배 전화를 빌려 음성메시지를 남기셨더라. ‘상 받았다며. 축하한다’고. 눈물이 났다.”
- 그 시절이 가끔 그리운가.
“무대는 걱정 근심을 잊게 하는 공간이다. 목숨 걸고 연기를 했던 시절이다. 그립다.”
-돈도 좀 벌었겠다. 재테크도 하나.
“돈? 벌어놓은 건 없다. 이제 겨우 빚을 갚았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도 아직 전세다. 승용차도 리스해서 타고 있다. 재테크가 가당키나 한가?”
- 나이도 있는데 이젠 결혼을….
“결혼? 만나던 여자와 헤어진 지 3년 됐다. 이젠 여자를 만날 기회가 없다. 적어도 여자 문제에 있어서는 포기가 빠르다. 대시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 마는 성격이니까. 그래서 후회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운명이란 걸 믿는다.”
○ 박희순 넌 누구냐?
배우 ‘박희순’이 관객에게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각인시킨 작품은 영화 ‘가족’이다. 비열하고 잔인한 조폭으로서 등장한 그의 연기는 지금까지도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엉뚱하게도 이후 그의 영화 속 캐릭터에도 그림자를 남겼다. 정작 그는 ‘보스상륙작전’과 ‘가족’, ‘바보’ 등의 영화에서만 조폭 역을 맡았다. 그 만큼 ‘가족’이 남긴 강렬함이 크다는 말이겠다.
2007년작 ‘세븐데이즈’는 그를 대중적인 배우로 이름을 남기게 해준 작품이다. 경박하지만 유괴범을 뒤쫓는 형사를 연기한 뒤 지난 해 각종 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다시 ‘작전’으로 더욱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작전’ 속 다양한 캐릭터 속에서도 그가 가장 눈에 띈다는 관객과 평단과 언론의 찬사는 거짓말이 아니다.
정확한 발음과 깔끔하면서도 정교한 연기력,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박희순은 이제 자신의 자리를 찾은 셈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