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버지와오붓한목욕탕데이트

입력 2009-02-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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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늦잠을 즐기고 있던 일요일. 어머니께서 제 방문을 여시더니 “니 많이 피곤나? 니 아버지가 니 일어났으면 목욕 같이 가자하시는데…”하며 미안한 듯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회사업무가 많아 하루 대여섯 시간도 못 자고 출근하는 걸 뻔히 알기에, 어머니는 미안하고 난처한 듯한 표정이셨습니다. 갑자기 “웬 목욕이냐?”고 묻자 “하이고. 그래 말이다. 목욕은 혼자서도 잘 댕기는 양반이 오늘은 무신 바람이 불었는지… 꼭 너랑 같이 가야겠다 하시는데 목욕 다녀와서 한 숨 더 자면 안 되겠나? 아버지 밖에서 기다리시는데…” 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랑 같이 목욕했던 게 중학교 졸업반까지던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언제부턴가 거의 혼자 다니거나, 어쩌다 마음 맞는 친구가 있으면 친구랑 같이 갔습니다. 거의 10여년 만에 같이 목욕을 가는 것 같은데, 낯설긴 해도 얼른 아버지를 따라 나섰습니다. 입구에서 아버지께서 목욕비를 내시려고 하기에, 제가 얼른 계산을 했습니다. 남탕으로 들어와 나란히 옷을 벗는데, 너무 오랜만이라 아버지 앞에서 알몸 보이기가 괜히 쑥스러운 겁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 생각 없이 훌훌 벗었을 텐데, 아버지가 옆에 계시니 자꾸만 뭉그적거리게 되었습니다. 온탕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가만히 계셨고, 저는 멀뚱한 눈으로 목욕탕 안을 둘러봤습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요즘 많이 피곤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아 예. 조금 그렇지요 뭐” 어색하게 일단 대답은 했는데, 그 다음 말이 궁했습니다. 전 다음 대화를 잇지 못 하고 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니랑 나랑 한집에 사는데도, 서로 바쁘다 보니 얼굴 보기가 어렵다. 그자?” 하고 또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같이 목욕한 것뿐만 아니라, 아버지랑 같이 대화 나눴던 일도 참 까마득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보고 돌아앉으라고 하시더니, 제 등을 밀어주셨습니다. 잠시 후 저도 아버지 등을 밀어드렸습니다. 아버지 등이 이렇게 좁았나, 적어도 어린 시절 제 기억 속엔 제가 밀다 지칠 정도로 아버지 등이 꽤 넓었는데, 지금은 제 손바닥 두 개로 가려질 정도로 아버지 등은 그저 좁기만 했습니다. 그 등을 보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옷을 입을 때, 초등학생 꼬마 녀석이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목욕탕에 오면, 아버지께서 달콤한 바나나 맛이 나는 우유를 사주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기억을 떠올리면 그 우유를 사서 아버지께 빨대 꽂아 드렸습니다. 나란히 앉아서 빨대 꽂은 우유를 먹고 있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보게 됐는데, 정답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 담 주에 또 올까요?” 제가 물어보자 아버지께서 “나야 좋지만 니가 괜찮겠나. 안 바쁘나?” 하셨습니다. “목욕하는데 뭐 하루 종일 걸리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요” 그러자 “그래 뭐. 자주 오면 좋지” 하시며 아버지께서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 날, 오랜만에 아버지와 목욕탕 데이트를 하고 나오니 몸도 마음도 참 상쾌하더군요. 아버지와 단 둘이 이렇게 얘기할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앞으로 자주 자주 같이 목욕탕 다니면서 이런 저런 얘기 많이 나눠야겠습니다. 경기 평택 | 최정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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