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어머님의깜찍한학력위조사건

입력 2009-02-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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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저희 시어머님 연세가 쉰일곱 되셨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님께서 어디 좀 잠깐 다녀오시겠다며 나가시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오시는 겁니다. 그리고 뜸을 들이시며 천천히 “에미야. 저 말이다. 너 혹시 이력서라는 거 쓸 줄 아니?” 하셨습니다. “이력서요. 어머니? 네. 쓰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런데 왜요?” 하니까 “응. 내가 취직 좀 하려는데 글쎄 이력서를 가지고 오라고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저희 남편이 발령을 받아 시내로 이사를 오게 되자 어머니께서 품 팔 곳이 마땅치 않아 어디 일하러 다닐 때 없을까 알아보던 중이셨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취직을 하시려고 이력서가 필요하다 하시는 건지 그걸 가져오라고 했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러자 “아니 그냥 조그만 공장이야. 동네 마실 다니면서 어떤 아지매가 자기 다니는데 같이 다니자고 하더구나. 거기서 이력서에 사진도 붙여서 오라고 하는데 나 원 참. 육십이 다 된 늙은이한테 무슨 이력서를 가져오라는 건지, 문방구 가면 판다고 해서 한 장 사오기는 했다만, 시골에서만 살아서 이런 걸 써봤어야지”라고 하셨습니다. 전 일단 어머님이 사 오신 이력서에 빈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함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모두 썼고, 이제 학력을 써야 하는데 “어머니, 이거는 학교 어디까지 다녔는지 쓰는 거거든요? 어디까지 나왔다고 쓸까요?” 했더니 어머니 안색이 몹시 흔들리는 겁니다. “나? 국민핵교까지 나왔지” 하시며 말꼬리를 흐리시기에 저는 ‘몇 년도에 00 국민학교 입학’ ‘몇 년도에 00 국민학교 졸업’ 이라고 써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표정이 영 떨떠름하시는 겁니다. 아마,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게 며느리 앞에서 창피해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서랍을 뒤져서, 어머님 정면 사진을 꺼내 반명함 크기로 잘라서 붙여드리고 짐짓 모른 척 해드렸습니다. 어머님은 다행히 그 이력서로 취직을 하셨고, 저희가 힘들면 그냥 쉬시라고 해도 재미나다며 열심히 출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또 심각한 표정으로 오시더니 “에미야. 나 아무래도 공장 그만 둬야겠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재미있다고 좋아하시며 다니셨는데 왜 그러신지 여쭤봤더니 “내가 지금까지 아무리 어렵게 살았어도 남 속이고 나쁜 짓하며 살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사람인데, 사장님을 속였으니 그분 얼굴 볼 때마다 가슴이 벌렁벌렁 뛰어서 못 댕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한숨을 푹푹 내쉬시면서 “얘, 사실은 말이다. 그 이력서에 쓴 거 그거 거짓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 사실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다녔어. 시골에서 여자아이가 학교 다니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니? 간신히 다니고 있는데 3학년 때 막내 동생이 태어난 거야. 부모님은 농사짓느라 바쁘고, 내 밑으로 동생이 세 명인데 또 동생이 태어났으니 학교 그만두고 애기 봐야했지. 그러니까 내가 졸업이 아니라 중퇴인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님. 그거 하나 다르게 쓴 게 마음에 걸리셔서 무슨 고해성사 하듯이 힘겹게 ‘고백’하는 모습에 제가 “어머니, 괜찮아요. 사장님이 그거 알리도 없고요. 혹시 나중에 알아도 어머니가 열심히 일 하시면 다 봐주실 거예요” 하면서 위로해드렸더니 조금 안심하는 눈치셨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에 있었던 어머님의 학력위조(?) 사건, 요즘은 멜라민 파동이라든지, 원산지를 속인다든지, 그런 일들 많은데, 어머님 같이 정직하게 열심히 사신 분들도 계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어머님 올해 일흔 여섯 되셨는데, 주말농장 가꿔서 농약 안 친 유기농 채소 이웃 분들께 나눠드리며 그 재미에 살고 계십니다. ‘내 스스로가 떳떳해야 잠자리가 편하다’고 하시는 우리 어머님 지금까지도 참 건강하십니다. 경기 수원 | 이원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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