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사랑으로버무린김장열포기

입력 2009-02-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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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해 노인 요양사 자격증을 따서 작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애가 아직 초등학교 4학년이고,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때라서 길게는 하지 못하고 네 시간만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집에 홀로 계시거나 어르신들만 계신 집에 가서 돌봐드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하게 된 가정은 노부부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그 집엔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한쪽 손을 못 쓰시게 돼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예순다섯 살의 할머니와 귀가 거의 들리시질 않고 백내장이 심해 잘 보지 못하시는 일흔 살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처음으로 그 집에 찾아갔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두 어르신이 상을 펴고 밥을 드시는데, 반찬이라고는 프라이팬에 적당히 볶은 야채가 전부였습니다. 거기다 함께 놓인 김치는 시어빠질 대로 시어빠져 보통 사람들이라면 볶아 먹었을 법한 걸 그냥 드시고 계셨습니다. 그 날 어르신들을 처음 뵙고, 목청을 높여 인사를 드렸지만, 두 분은 그저 무표정하게 저를 바라볼 뿐,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얼굴을 하신 채 다시 묵묵히 밥을 드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제대로 된 식사라도 하실 수 있게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만든 반찬과 함께 두 분이 항상 식사를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찾아뵐 때마다 너무 고마워하시면서 제 손을 몇 번이고 잡아주시는데, 그런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더 잘 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아직 김장도 못 하셨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서 많이는 못해드렸지만 급한 대로 김장을 열 포기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두 어르신은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모아두셨던 용돈을 제게 주셨습니다. 아무리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쳐도 두 분이 굳이 제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시는 통에 저는 절반만 받아 그 돈으로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는 찬거리를 샀답니다. 제가 어르신 댁에 가는 날이면 저 오기만 기다리셨는지, 문 열고 들어가는 때부터 다시 나올 때까지 제 옆에서 떨어지실 줄을 모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습니다. 가끔은 그 대화를 다 들어드렸다간 아무 일도 못 할 것 같아서 ‘네네네’라고 대답만 하면서 일에 집중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게 걱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구역 배치가 새로 되는 바람에 다음달이면 다른 집으로 파견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이 두 분은 저를 보실 때면 항상 “주말에는 우리 집이 완전 절 속 같아. 우리가 매주 조 선생만 기다리는 거 모르지?” 라며 절 붙잡고 놔주시지를 않아서 걱정입니다. 저 역시도 갈수록 정이 들어서 어떻게 헤어지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결심을 하나 했는데, 이젠 제가 어르신 댁을 봐드릴 수는 없지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시간 날 때면 가끔씩 찾아뵈려고 생각 중입니다. 정말이지 어르신 모시기를 즐거워할 마음만 있으시다면 저처럼 공부하셔서 자격증 따시고 봉사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속에 보람도 있고, 이것만의 즐거움도 있답니다. 전북 익산|조미옥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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