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같은딸,딸같은아내

입력 2009-03-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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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올해 열두 살인 겁 없고 단순하고 욕심도 없고 착한 딸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 마흔 넷이지만 겁 많고 애교 많고 인정 많고 알뜰하다 못해 지독하기만 한 제 아내가 있습니다. 제 아내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귀여운 여자입니다. 특히 제 딸은 동성인 여자친구는 좋아해도, 남자는 오직 아빠인 저 밖에 모르는 아이입니다. 그리고 병원 가는 것도 좋아하고 약 먹는 것도 좋아하는 좀 특별한 아이입니다. 공부는 반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잘하고, 장래희망은 아기엄마에서 작년에 간호사로 바뀌었답니다. 올해는 시골에서 닭이나 개를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가끔 보면 제 아내보다도 제 딸이 더 엄마 같고 어른스럽답니다. 하루는 제 아내가 쌀을 씻는데, 자기가 직접 씻는 게 아니라 딸 손으로 씻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겁 많은 제 아내가 딸아이를 불러서 옷소매를 걷게 하더니 자기는 딸의 손목을 잡고, 딸은 자기 손으로 쌀을 잡고 그렇게 쌀 씻기를 하는 겁니다. 제가 이상해서 왜 그런지 물어봤더니 “이거 작년에 먹던 쌀인데, 밥하려고 보니까 쌀벌레들이 잔뜩 있는 거야. 그래서 무서워서 딸애한테 부탁했어”라고 했습니다. 딸도 엄마를 대신해 쌀 씻는 걸 뿌듯해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저도 모르게 껄껄 웃고 말았답니다. 시금치나 배추 같은 채소는 누가 다듬어 주지 않으면 아직도 스스로 다듬을 줄 모릅니다. 작은 벌레 한 마리에도 새파랗게 질려 벌벌 떨면서 난리를 칩니다. 그러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딸입니다.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 아내는 얼마나 울었는지 큰 눈이 퉁퉁 부어서 싱크대 위에 올라가 울고 있었습니다. 제 딸이 그 앞에서 웃겨 죽겠다며 깔깔깔 웃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제 딸애가 “엄마가 아빠 요즘 힘들어 보인다고 장어를 고와준다고 장어를 사왔는데, 혼자서 만지지도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더라. 그래서 내가 다 했어” 이러고 웃었습니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장어는 일반 간 큰 주부들도 손질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겁 많은 우리아내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처음엔 고무장갑을 몇 켤레나 끼고 장사하시는 분이 가르쳐 준대로 깨끗이 씻는 것까지는 용케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달궈진 솥 안에 장어를 넣는 일은 쉽지 않았는지 딸아이에게 방망이를 하나 들려주고, 보초를 서게 한 다음 솥에 넣으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세 마리 중에 두 마리가 도망을 쳐서 주방과 거실을 돌아다니니까 아내는 겁에 질려 넋이 나가 싱크대 위로 올라가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보초서고 있던 제 딸이 맨손으로 장어를 잡아 다시 깨끗이 씻어서 솥 안에 무사히 넣고, 울고 있는 엄마를 달래고 있었답니다. 딸아이 덕에 장어 진국을 먹었지만 아내의 눈물이 들어 간 탓인지 조금 짰습니다. 보통 여자 분들은 나이가 들면 소도 때려잡을 만큼 겁도 없어진다는데 제 아내는 나이가 들수록 더 겁이 많아집니다. 반면에 제 딸만 힘이 세지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딸아이가 조금 컸다고 엄마는 내가 지킬 테니 아빠는 일에만 신경 쓰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에 오히려 제가 안심이 될 정돕니다. 뭔가 엄마와 딸이 바뀐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지만 저는 우리 두 여자와 함께 사는 재미가 아주 좋답니다. 앞으로는 저희 아내도 좀 더 자신감 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대구 남구 | 정시완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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