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행복한아침편지]둘째잃어버릴뻔했던사연

입력 2009-05-27 1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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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라도 시골 ‘깡촌’에서 조그만 간이역에 근무하던 남편과 함께 다섯 살, 세 살 된 두 아들을 키우며 좁지만 아담한 역사 관사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가진 건 없었지만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지요.

그런데 멀리 큰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누이가 결혼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이 모두 저희 집으로 오셨고, 철도청 직원이었던 남편은 인원수대로 완행열차 왕복표를 구입해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결혼식을 하면 집에서 이것저것 음식장만을 해가야 했거든요. 친정언니들한테 부탁해서 큰언니는 돼지고기를 삶아 가지런히 썰어 수육을 만들어 왔고, 둘째 언니는 떡을 준비해줬습니다.

그리고 올케들은 전라도식 홍어무침과 부침개 등을 해왔습니다.

그 짐을 바리바리 들고 열 명이 넘는 시댁 어르신을 모시고, 한복까지 곱게 차려 입고, 남편과 애들 둘 데리고 드디어 시누이 결혼식장에 갔습니다.

하지만 손님들 오시기 전 상 차리느라 식은 보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시어머님께 맡겨 뒀습니다. 잠시 뒤 시어머니께서 다급하게 오시더군요.

“야~야~ 이리로 둘째 아 안왔나? 신영이 말이다. 야가 암만 찾아도 안 뵈인다. 사람도 많고 복잡한데 야가 어딜 갔나” 하시면서 얼굴이 하얘지셔서 오셨더군요.

당시 둘째 아들 나이가 세 살이었는데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저는 음식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신영이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안에는 없고, 아무래도 식장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았습니다. 길도 모르는 애가 뭐하러 나갔을까…

저는 한참을 뛰다가 다시 예식장 앞으로 왔습니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가 있어서 서로 연락하며 찾을 텐데, 그 때는 예식장 앞으로 와야만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알 수가 있었거든요.

저녁때면 집에 돌아갈 열차표도 예약돼 있는데, 그 안에 우리 신영이를 못 찾으면 어쩌나… 저는 신영이 또래가 보이면 무조건 달려가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한 서너 시간 흘렸을까… 여기저기 찾다 허탕을 친 저는 다시 예식장 앞으로 갔는데요, 저 멀리 저희 남편이 신영이를 안고 오는 것 같더라고요. 자세히 보니 우리 신영이 맞았습니다.

“아이구~ 이 녀석아 어딜 갔었어~ 엄마가 얼마나 찾았는데… 아이구 이 철없는 것아~” 저는 얼른 신영이를 남편에게 뺏어서 안았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어디 다친데 없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죠.

누가 잘못 했든, 이유야 어찌됐든, 그 순간엔 전혀 중요치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 애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거, 그것만이 감사했지요.

그때 결혼식 마친 시누이도 얼굴이 파래져서 뛰어오더군요.

조카가 없어졌다는 말에 결혼식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저희 가족이 조금 정신을 차리자, 그제서야 남편이 얘기하더군요.

정신없이 신영이를 찾아다니는데, 어떤 여학생이 신영이 같은 애를 안고 지하도로 내려가는 게 보였답니다. 애가 울고 있어서, 혹시나 하고 달려갔는데, 저희 신영이가 맞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여학생한테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애가 계속 울기만 하고 대답을 못 하기에, 근처 유치원에 데려가서 부모를 찾아주려고 했다더군요.

왠지 거기에 부모가 있을 것 같았답니다. 만약 그 때 그 여학생이 지하도 아래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광주 남구 | 박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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