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편히…’마지막인사,權여사참았던눈물터뜨려

입력 2009-05-29 12: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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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경복궁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이 거행되고 있다. 【서울=뉴시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부터 화장의식까지>



● 영결식 1시간 10분간 엄수

영결식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아들딸 건호·정연 씨를 포함한 유족 등 2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장의위원 1000명과 각계 인사 및 시민 800명도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에 앞서 이날 오전 5시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는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전직 각료, 주민,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가 열렸다.

발인제는 태극기로 감싼 관에 모셔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빈소 밖으로 운구하고 나서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진행됐다.

발인제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유족들이 뒤따르며 사저와 생가를 돌아봤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당초 예정보다 늦은 오전 6시경 봉하마을을 떠나 경찰 순찰차 5대와 선도차 뒤에 영정차, 영구차, 상주 및 유족대표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과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순으로 영결식장으로 향했다.

영결식은 운구차량 행렬이 약 5시간의 여정 끝에 오전 11시경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 마련된 영결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됐다.

이후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인 약력보고,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장 무대 양쪽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를 비롯한 고인의 행적을 기리는 생전의 영상이 방영됐다.

이어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등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권양숙 여사를 포함한 유족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인사, 외교사절들이 차례로 노 전 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했다.

영결식은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과 해금으로 연주하는 '아침이슬' 등 추모공연에 이어 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의식을 끝으로 1시간 10분 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뿐 아니라 광화문과 서울광장, 서울역 일대의 대형 전광판에서도 생중계됐다.

[영결식]<1보> 한 총리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예정대로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된 이날 영결식은 묵념에 이어 이달곤 집행위원장의 약력보고가 있었으며 오전 11시 10분 현재 한승수 총리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한 총리는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시고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한편 이날 서울광장과 세종로 사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색 풍선을 든 채 언론사의 전광판으로 생중계되는 화면을 시청하며 영결식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결식]<2보>한명숙 “다음세상에선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한승수 총리에 이어 조사를 낭독한 한명숙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린 뒤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하고 울먹였다.

한 전 총리는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그 무거운 짐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빈다"고 말했다.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영결식]<3보> 이대통령 헌화시 야유 터져

영결식에서 노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비는 종교의식은 각각 불교 명진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주지), 기독교 권오성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노 전 대통령에게 영세를 주는 등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해왔던 천주교 송기인 신부, 원불교 이선종 서울교구장의 집례로 진행됐다.

이어 노 전 대통령 생전의 영상이 제단 양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4분여간 방영됐다. 이 영상에서 노 전 대통령은 "지금까지 제일 마음에 드는 별명이 '바보'"라고 소개하면서 "정치하는 사람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눈 앞의 이해관계로만 판단하니까 영악한 행동이 나오는 것"이라며 "바보 하는 게 정치하는 데에는 좋다"고 말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을 배경으로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낭독됐으며 고인의 서거 이후 애통해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용운의 '님은 갔습니다' 시를 적어 넣은 영상이 방영됐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29일 오전 경복국에서의 영결식을 마친 뒤 광화문을 지나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한 가운데, 권양숙 여사와 딸 노정연 씨 등 유가족이 지친 표정으로 노제에 참석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어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 딸 정연 씨를 비롯한 유족의 헌화 이후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와 분향을 하러 나오자 영결식장은 야유를 보내는 참석자들로 소란해졌다. 광화문 일대에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는 시민들도 큰 소리로 야유를 보냈다.

소란이 가라앉지 않자 경호관들이 이 대통령 내외 주변을 둘러싸는 등 잠시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됐으며 사회자가 "고인을 마지막 보내드리는 길에 경건한 마음으로 명복을 빌어드리자"고 장내를 정리하기도 했다.

이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고위인사와 외교사절 등의 헌화와 분향, 묵념이 진행됐으며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의식이 이어졌다.


[영결식]<4보> 영결식 마무리 서울광장 이동

29일 낮 12시 24분 삼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마지막으로 영결식이 마무리됐다.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사진을 실은 무개차와 영구차 등 운구행렬이 영결식장을 떠났으며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과 장의위원 등이 그 뒤를 따라 도보로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운구 행렬을 배웅했다.

운구행렬은 동문을 빠져 나와 세종로를 거쳐 노제가 열리는 서울 광장으로 이동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29일 오전 경복궁에서의 영결식을 마친 뒤 광화문을 지나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고마워요 미안해요”…서울 광장서 눈물속 노제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선창을 따라 서울광장에 운집한 수십만명의 추모객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하고 외치며 울음바다가 됐다.

29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 운집한 추모객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창곡이었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를 마무리했다.

노제가 끝난 뒤 오후 2시경 영구차는 통곡하는 추모객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운구 행렬 뒤로는 노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 등이 적힌 수많은 만장이 뒤따랐다.

29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진행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제는 이날 오후 1시20분경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 도착과 함께 시작됐다.

영결식이 열린 경복궁에서 서울광장까지 대형 영정을 실은 무개차를 필두로 영구차가 뒤따랐으며 권양숙 여사 등 유족, 장의위원 등이 그 뒤를 따라 걸어서 이동했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을 들고 노란 모자를 쓴 추모객들은 ‘아침이슬’을 부르며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가수 안치환 양희은 윤도현 등이 추모곡을 불렀으며 오후 1시 20분경 김명곤 노제 총감독 (전 국립극장장)의 개식 선언과 함께 큰 북을 울리고 혼을 불러오는 나팔 연주로 노제가 시작됐다.

크레인에 올라탄 김명곤 전 국립극장장이 하얀 수건을 휘두르며 초혼() 의식을 치렀고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 맞이 소리가 치러졌다. 이어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 김진경 시인의 추모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등의 행사가 약 30여분간 진행됐다.

“고마워요 노무현/아무런 호칭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국립무용단이 진혼무를 추는 동안 안도현 시인이 추모시를 낭독하자 서울광장 앞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회를 맡은 도종환 시인은 “우리는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비통해 하면서 “그 분의 조각난 육신으로 인해 이 나라의 정의로운 이들이 다시 하나가 되고 진정으로 뉘우치고 용서하고 화합하고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묵념을 제안했다.

이어 2006년 임대주택 수혜자 대표로 주거복지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장시아 씨(24.여)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했다.

노제가 끝난 뒤 운구 행렬은 다시 숭례문 앞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정도를 도보로 이동한다.운구 행렬 뒤에는 시민들이 장의위가 준비한 만장()을 들고 따라가며 노 전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이어 오후 3시경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유가족과 집행·운영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순의 종교의식 속에서 약 2시간에 걸쳐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함에 담겨 고속도로를 이용해 오후 9시경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향후 사저 옆 야산에 조성되는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 운구행렬 수원 연화장 도착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예정된 일정보다 3시간이 지연된 오후 6시5분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했다.

연화장에서는 노랑 풍선을 든 조문객들이 몇 시간 전부터 몰려 운구차를 기다렸으며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을 태운 버스도 오후 4시반경 연화장에 먼저 도착해 운구차를 기다렸다.

서울의 추모 인파에 발이 묶여 뒤늦게 도착한 운구차를 맞이한 의장대는 고인의 관을 운구대차, 화장대로 옮기는 절차를 밟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될 8번 분향실 앞에서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과 마지막 고별인사를 나누게 된다. 화장은 1시간 넘게 걸릴 예정이다.

장의위원회측은 화장이 끝나면 냉각 과정을 거친 뒤 분골 없이 향나무로 제작된 유골함에 고인의 유해를 담아 봉하마을로 돌아가서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할 예정이다.

인터넷 뉴스팀

●노 전대통령 불길속으로…발인 봉하마을 떠난지 12시간만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돌아올 수 없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오후 6시35분. 이날 오전 6시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떠난 지 12시간여 만이었다.

이날 운구행렬은 예정된 일정보다 3시간가량 지연된 오후 6시5분경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했다.

서울의 추모 인파에 발이 묶였던 운구차가 뒤늦게 도착하자 몇 시간 전부터 운구차를 기다린 조문객들은 노랑 풍선을 흔들며 오열했다. 오후 4시반경 미리 도착한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전 장관 등의 측근들이 운구차를 맞았다.

6명의 의장대가 태극기로 감싼 고인의 관을 옮겼으며 권 여사 등 유족과 장의위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행렬이 연화장 내 승화원에 가까워질수록 지지자들의 통곡소리도 커졌다. 의장대가 화장로 앞 운구대차에 노 전 대통령의 관을 내려놓고 마지막 거수경례를 하자 권 여사도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듯 눈물을 닦았다.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연호하는가 하면 “여사님, 힘내세요” 등을 외쳤다.

유가족은 영정에 절을 하는 간단한 분향의식을 지낸 뒤 8번 분향실로 이동했으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간단한 천주교 의식이 진행됐다. 내내 눈물을 참던 권양숙 여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오열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극기를 벗겨낸 관은 8번 화로로 입관됐다. 빨간 색 비단 천이 위를 덮고 국화 꽃 세 송이가 놓여 있었다. 오후 6시35분 화로의 문이 닫히면서 고인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승화원 바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졌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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