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前대통령과의‘만남-이별’의애증관계

입력 2009-08-18 14: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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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애증으로 얽힌 관계였다. DJ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기도 했지만 대선과 같은 결정적 순간엔 그를 돕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DJ 정부를 승계했지만 'DJ식 정치'를 부정하는 일로 임기를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이후 두 지도자의 갈등은 격화됐다.

DJ와 노 전 대통령이 처음 만난 것은 13대 국회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김영삼(YS)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제의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YS가 1990년 통일민주당과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을 합치는 3당 합당을 하자 결별하고 DJ의 통합민주당에 합류했다. 1995년 DJ가 대선 도전을 위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도 한때 '야권 분열'이라며 합류를 거부했다.

두 사람이 본격적인 협력관계를 맺은 것은 1997년 대선 때였다. DJ가 1997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 국민회의 부총재였던 노 전 대통령은 수도권 특별유세단장을 맡아 DJ 정권의 탄생에 일조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 노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지자 DJ는 그에게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겨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그의 도전에 보상을 해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위해 민주당 후보 경선에 나선 2002년, DJ는 당내 경선이 끝날 때까지 어느 후보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가신그룹인 동교동계는 경선 시작 전까지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았던 이인제 의원을 지원했지만 경선이 시작된 뒤 '노풍(盧風)'이 불자 중립적인 모양새를 취했다. DJ는 대선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DJ와 가까운 인사는 "중립을 지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인 DJ가 정권 재창출 과제를 놓고 후보들을 끊임없이 저울질했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실시된 '대북 송금' 특검은 DJ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에 결정적인 균열을 낳았다. 대북 송금 특검법은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이었다. DJ 측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기대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DJ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도 특검을 수용했다.

DJ는 특검 수사가 진행되자 "대북 송금 문제는 사법적 심사대상이 돼선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하지만 2003년 6월 특검 수사팀은 DJ의 측근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구속했다. 그해 8월에는 수사 대상이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투신자살했다. 동교동계의 한 인사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받은 충격과 배신감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열린우리당 창당도 두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민주당이 DJ가 만든 당이었다면 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만든 '노무현당'이었다. 당시 민주당에 남은 인사들은 '분당 행위'라며 노 전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했고, 신당에 참여한 인사들은 이들을 '구태정치인'으로 몰아세웠다. DJ 임기 중에 이뤄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 혐의로 임동원 신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2005년 구속된 일도 씻기 어려운 앙금으로 남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가 퇴임 직전인 지난해 1월 박 전 비서실장과 임, 신 전 원장을 사면 복권시켰다.


두 지도자의 갈등은 지난 대선 국면에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지지기반이던 호남 표심을 잃어버린 열린우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닌 DJ에게 구애를 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호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지기반이 무너진 핵심적인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이 대북 송금 특검을 받아들인 일을 언급하며 동교동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했다. DJ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조건 없는 통합'만이 범여권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을 '구태정당' '지역정당'으로 여겼던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합치는 데 끝까지 반대했다.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다수가 DJ와 호남 표심에 호소하며 임기 말년의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탈당해 민주당 일부 세력과 함께 신당을 만든 것을 거세게 비판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일부 세력의 추대를 받아 범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로 떠오른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 '보따리장수'라는 딱지를 붙였고, 범여권 신당의 최종 후보가 된 정동영 의원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다.

DJ와 노 전 대통령의 화해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이뤄졌다. DJ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평생의 민주화 동지를 잃었다. 민주정권 10년을 같이 해 온 사람으로서 내 몸의 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라고 토로했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건강했던 DJ가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돼 병원에 입원한 것도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충격이 요인 중 하나였다는 게 DJ 측근들의 설명이다.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르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고 충격을 받으셨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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