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사커에세이]기성용이적조급증버려라          

입력 2009-08-2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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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 [스포츠동아 DB]

어렸을 적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나는 어른들의 눈치를 보곤 했다. 기말고사가 당장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새벽에 월드컵 생중계를 봐야 한다든지, 약속된 시간이 지났는데 축구게임을 계속하고 싶다든지, 그럴 때 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부모님께 허락을 구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이 “알아서 해라”였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그 말씀을 곧 ‘마음대로 해라’로 받아들였던 나는 아침마다 학교에 지각하기 일쑤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행동에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하지만 내 선택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94년 미국월드컵 8강전에서 불가리아가 독일을 2-1로 물리친 역사적인 순간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그 소식을 전한 친구들을 바보 취급하다가 왕따가 돼 버렸던 거다.

요즈음 기성용의 해외진출을 놓고 축구계가 시끌벅적하다. 스코틀랜드의 셀틱FC가 기성용을 원하는데 소속팀 FC서울은 선수를 놓아주지 않는 가운데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무조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기에 선수에이전트와 아버지의 견해까지 곁들여졌다. 하지만 정작 이적설의 주인공인 기성용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기성용은 스무살이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선수로 성장했다. 그동안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가 이제 중요한 첫 번째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기성용의 주변에는 이해관계를 떠나 그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 줄만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기성용은 이제 어른이니까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셀틱은 움직일 만한 가치가 있는 클럽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셀틱이 스코틀랜드 최고 명문구단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셀틱은 100년 이상 영국 북부의 강자로 군림해 왔고, 전 세계에 걸쳐 1000만 명에 달하는 추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대륙을 둘러봐도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6만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클럽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조직의 일부로서 선수 개인이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박지성만 해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주전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얻는데 4년의 시간이 걸렸다. 셀틱의 미드필드에는 스콧 브라운, 배리 롭슨, 에이든 맥기디 등 국가대표급 자원이 풍부하고, 마시모 도나티 같은 외국인 선수와도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게다가 자국 리그에서 ‘공공의 적’이 돼 버린 셀틱의 선수들은 거친 태클과 부상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토니 모우브레이 감독은 스쿼드 보강 차원에서 기성용을 원했을 테지만, 셀틱이 유럽축구연맹 챔스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아스널에 패해 본선진출에 실패함에 따라 선수를 추가로 영입할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조급하게 생각할 건 없다. 시간은 기성용의 편이다. 올 시즌 K리그와 아시아축구연맹 챔스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는 FC서울에서 기성용이 이뤄야 할 일들은 아직 남아있다. 그리고 내년 여름 FIFA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더 좋은 영입 제의가 들어올 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선택은 기성용의 몫이다.


FIFA.COM 에디터
2002 월드컵 때 서울월드컵 경기장 관중안내를 맡으면서 시작된 축구와의 인연. 이후 인터넷에서 축구기사를 쓰며 축구를 종교처럼 믿고 있다.국제축구의 흐름을 꿰뚫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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