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아빠가도와줬어요”펜싱전희숙눈물의銀

입력 2009-10-06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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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선수권러시아에석패“경기전날꿈속에아빠가…”
“아빠….”

깨어보니 꿈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을 잡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던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도 “같은 꿈을 꿨다”고 했다.

5일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2009세계펜싱선수권. ‘아빠가 좋은 선물을 주시려나?’ 경기장으로 향하는 전희숙(25·서울시청)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여자플뢰레에 나선 전희숙은 8강에서 라리사 코로베이니코바(러시아), 4강에서 아리나 에리고(이탈리아)를 꺾은 뒤, 결승에서 아이다 샤나에바(러시아)에게 11-12로 석패했다. 값진 은메달.

2008년 6월, 지병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 전희숙은 “죽기 전에 우리 딸 올림픽 나가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던 아버지에게 항상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베이징올림픽이 8월이었잖아요. 제가 만약 나가게 됐더라면 두 달은 더 사셨을 텐데….” 전희숙은 말을 잇지 못했다.

펜싱 칼은 전자감응기에 연결시켜야 하는데, 보통 여자선수들은 이음새 부분에 문제가 생겨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전희숙은 중학교 시절부터 펜싱 칼을 잘 수리하기로 유명했다.

전희숙은 “아버지가 전기기술자셨는데, 아버지로부터 인두기로 땜질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전희숙의 경기라면 지방까지도 따라다녔던 아버지의 헌신. 전희숙도 늦은 밤까지 훈련장의 어둠을 홀로 밝혔고, 마침내 2009년 ‘유망주’의 꼬리표를 뗐다.

“한국가면, 충주에 있는 산소에 가서 인사드리려고요. 2010년 아시안게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꼭 메달을 따고 싶어요. 아버지 한도 풀어드려야죠.” 사르르 떨리는 전희숙의 목소리. 하지만 목소리에 밴 의지는 칼끝처럼 날카로워 보였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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