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금 사냥” 호주전훈 떠난 박태환…“수영과 질리도록 연애할 것”

입력 2010-01-19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처음 수영을 할 때의 꿈은 태극기를 다는 것이었다. 대표팀에 들어가서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었다. 올림픽 무대를 밟으면서는 금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였다.” 자, 이제 박태환의 꿈은 무엇일까? 박태환은 “2007멜버른세계선수권에서의 설렘과 2008베이징올림픽에서의 기술을 합친다면,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선진기술 갈증 풀 볼코치와 훈련 두근두근 요즘 훈련량? … 수영을 관두고 싶을 정도
외로움은 힘들지만 정상 위해선 견뎌 내야 “언젠가는 떡볶이 만들어 줄 여친 생기겠죠”
2009로마세계수영선수권 직후 서울의 모 삼계탕 집. 박태환(21·단국대)은 아버지 어머니와 오랜만에 가족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선수권에서의 부진 때문인지 밝지만은 않은 분위기. 테이블에서는 닭을 훑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들이 먼저 적막을 깼다. “아빠, 이제 첨단수영복을 못 입게 된다잖아. 그러면 세계기록 깰 사람이 나 밖에 더 있겠어?” 박태환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것보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일부러 호기를 부렸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너털웃음.

박태환의 가족을 알아본 옆 테이블에서도 응원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또 한 번 웃었다. 한껏 기분이 좋아진 박태환은 결국 옆 테이블의 식대까지 치렀다. 힘들 때의 박수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법. 박태환은 “다음 번에는 팬들 모두에게 조그만 선물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가족과 팬들에게 안길 또 하나의 금메달을 위해, 박태환은 16일 호주 브리즈번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외국인 지도자와의 호흡은 오랜 꿈

12일 태릉선수촌. 베이징올림픽 3관왕 스테파니 라이스(21)를 조련한 마이클 볼(48·이상 호주) 코치와의 본격적인 훈련을 앞둔 박태환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 실현됐기 때문이다.

피터 반 호겐반트(32·네덜란드), 이언 소프(28), 그랜트 해켓(30·이상 호주). 박태환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세계적인 수영스타들의 경기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즐겨봤다. 눈썰미라면 자신 있었다. 따라해 보기를 몇몇 해.

마침내 그들이 바로 옆 레인에 있었다. 경기 전 훈련 때면, 그들의 턴 기술을 보기 위해 일부러 기다렸다. 턴을 할 때 대각선으로 몸을 돌려, 유선형으로 나오는 기술이 있다는 것도 소프의 동작에서 배웠다. 박태환의 창조적 영법은 모방의 산물. 하지만 박태환은 “그들의 노하우가 완전히 내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스타트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선진기술에 대한 갈망이 여전히 박태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다.


○수영이 싫어져야 세계정상에 설 수 있다

수영전문가들은 박태환을 가리켜 “한국수영 역사상 최고의 물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박태환은 본인은 “물을 잘 탄다”는 말을 “스트로크 시 거품이 적고, 물의 파편이 튀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깔끔한 영법감각을 타고 났어도, 훈련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세계정상에 설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박태환의 부진 이후 이 점을 지적 했다.

박태환은 역설적이게도 “철저하게 수영이 싫어져 물에도 들어가기 싫은 정도가 돼야 한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자신과의 싸움’은 견뎌야 하는 대상이지,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2008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그래서 박태환은 자신의 사진을 방에 걸어두고 절치부심했다는 장린(23·중국)처럼은 하지 않는다. “세계정상에 섰을 때는 누구의 사진을 걸어 둘 것인가?”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오로지 자신을 극한에 밀어 넣을 뿐. “요즘 그렇게 하고 있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수영을 떠나고 싶을 정도예요.”


○수영선수도 사람, 나는 외롭다

세계선수권 이후가 공허했던 순간.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조언들을 해준 사람은 장미란(27·고양시청)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과 부담감. 공통의 경험 때문인지, “성장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흔한 말도 장미란에게서 들으면 잘 몰입이 됐다. 수영과 고독은 한 몸. 오랜만에 이해받는 기분을 느꼈다.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 씨는 “크리스마스 때도 (박)태환이가 집에만 있는 모습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물 속에서만 보낸 학창시절. 수영선수 이외의 친구는 헤아려 봐도 열명 정도. 고된 훈련을 마치면 외로움이 밀려든다. “소주는 냄새만 맡아도 싫어요.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여자친구도 없어요.” 한 때 열애설이 퍼졌던 원더걸스의 선예와 예은(이상 21)은 “가슴속 깊은 얘길 귀담아 주는 친구들일 뿐”이라고 했다.

가슴속이 허전했기에 이런저런 말들에 쉽게 흔들리기도 했다. 박태환은 한때 비과학적인 ‘기 치료’를 선호해 수영인들의 애를 태웠다. “제가 사실, 귀가 좀 얇아요. 그 때는 제가 좀 바보였던 것 같아요.” 기 치료의 본산인 중국의 선수들도 과학적 트레이닝에만 의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좌충우돌하며 제 갈 길을 찾는 보통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제는 외로운 마음을 추스르고 싶기도 하다. 이상형은 착하고, 헌신적인 사람. 박태환은 “떡볶이를 해줄 수 있고, 함께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사람이면 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가 될까. 박태환은 “그간도 수영과 연애를 해왔다”며 웃었다.

태릉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태릉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