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류정한 ‘카리스마’+옥주현의 ‘감성’

입력 2010-05-19 17: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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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몬테크리스토’를 뒤늦게 봤다.

공연도 연인과 닮은 데가 있어서 보고 싶다고 즉각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문화 담당을 하다 보면 경험상 인연이 닿는 공연이란 것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암굴왕’의 열렬한 팬이었던지라 ‘몬테크리스토’에 대한 기대감은 적지 않은 편이었다. ‘지킬앤하이드’의 음악을 담당했던 프랭크 와일드혼의 신작이라는 점도 대단한 매력이다.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에 전율해 봤다면 ‘몬테크리스토’의 객석에 앉아 있을 자격이 충분하다.

‘몬테크리스토’는 전체적으로 템포가 빠른 작품이다. 짚고 넘어가야 할 곳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매만지지만 그렇지 않은 데서는 성큼 성큼 지나가 버린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는 가위질은 아니고, 영상과 실사를 적절히 활용해 놀라울 정도로 부드럽게 연결해 나간다.
이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는데 스크린을 사용한 영상의 연출력이 워낙 뛰어나 바다 속에 던져진 주인공이 자루를 풀고 헤엄쳐 수면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과장이 아니라 진짜로 입이 벌어졌다.

첫 장면에서부터 리얼한 키스 신으로 시선을 확 끌어 잡은 에드몬드 단테스(훗날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다)와 그의 연인 메르세데스는 이날 류정한과 옥주현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옥주현 배우의 팬이기도 하고, 모처럼 청순가련형의 전통적 여주인공 역을 맡은지라 좀 더 디테일한 표정 연기를 보기 위해 오페라글라스를 준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옥주현의 연기는 베스트 중에서도 베스트. 그의 노래, 연기를 꽤 보아 왔지만 확실히 이날 옥주현의 무대는 10점 만점에 10점 팻말을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남녀 주인공이 각자 다른 장소에서 이중창으로 부르는 히트넘버 ‘언제나 그대 곁에’도 좋았지만, 메르세데스의 솔로곡 ‘온 세상이 내 것이었을 때’는 그야말로 절창. 무대의 불이 꺼진 뒤 잠시 박수칠 타이밍을 놓쳤을 정도로 넋을 잃고 말았다.

옥주현이 어느 정도 열창을 했는가 하면, 성대에 다소 무리가 갔는지 이후의 노래에서 한동안 옥주현 특유의 찰진 윤기를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후반부에서는 원 상태로 돌아와 안심을 할 수 있었지만.



옥주현은 세 번의 애절한 솔로 장면에서 모두 세 번의 눈물을 흘렸다. 사실 영화, 드라마도 아닌 뮤지컬 무대에서 배우가 감정에 완벽히 이입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감정을 잡을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수백, 수 천 명의 관객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음을 감안하면 과연 어지간한 연기파 배우들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옥주현이 연인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쏟아대며 마스카라가 눈가에 번지도록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뾰족하게 소름이 돋은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야말로 전기가 온 몸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간 느낌.

옥주현의 연기가 감성의 극치를 보여줬다면, 몬테크리스토의 류정한은 왜 그가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 공연이었다. 그가 뿜어내는 분노의 열기는 극장 구석구석까지 미쳐 숨이 막힐 정도였고, 사랑의 세레나데를 노래할 때는 가슴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특히 고음에서의 그 짜릿한 황홀감이란!

단테스에게 누명을 씌워 암굴 속에서 썩게 만들었던 ‘악역 3인조’의 열연도 칭찬할 만하다. 특히 파리 검사장 빌포트를 맡은 조순창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미성으로 가득 찬 배우들 틈에서 수선화 속의 엉겅퀴처럼 묘한 마력을 풍겼다. 2009년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토를 맡았던, 헤비메탈 그룹사운드 보컬 출신의 이색 경력을 지닌 배우이다.

축약하자면 ‘몬테크리스토’는 볼거리, 들을 거리로 빈틈없이 메운 작품이다. 눈도 귀도 뗄 틈이 없다. 2시간이 그야말로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린다.
보고 있자니 문득 두려워졌다. 이 작품, 어쩌면 ‘오페라의 유령’을 능가하게 될지 모른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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