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 스포츠동아 DB
“저기, 머리 뾰족한 친구는 누구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장내에 이름이 울려 퍼졌다.
“(북한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하는) 세계의 시선을 바꿔놓겠다”고 호언했던 북한대표팀의 에이스가 주인공이었다. 정대세(가와사키)는 26일(한국시간) 알타흐 캐시 포인트 아레나에서 열린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전반 23분과 후반 7분 2차례 상대 골네트를 흔들며 2-2 무승부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 첫 골은 홍영조의 패스로 시작된 과감한 중거리 포, 두 번째 골은 자신이 상대 문전을 파고들다 오른쪽 사각 지역에서 절묘한 슛으로 만들었다.
2골 모두 리드를 내준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더 늦기 전에 유럽 무대에 꼭 진출하고 싶다던 정대세였다. 이날 경기장에는 유럽 클럽 스카우트가 대거 모습을 드러내 개인적인 소득도 챙길 수 있었다. 비록 그리스 골키퍼 선방에 걸리긴 했으나 전반 29분과 32분 시도한 슛도 날카로웠다. 거침없는 질주 본능이었다.
정확한 슛 감각과 타이밍, 상대 수비를 농락하는 가벼운 몸놀림이 인상적이었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도 적극적으로 해 북한 벤치를 흡족하게 했다.
북한 김정훈 감독은 “한 명이 잘했다기보다 모두가 잘해줬다”면서도 “(정)대세 개인적으로 좋았다”고 이례적인 칭찬도 했다.
전날 훈련을 마친 뒤 정대세는 “이번 월드컵 무대에서 매 경기 한 골씩 넣는 게 목표”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 입장에서 ‘가상의 포르투갈’이었던 그리스를 상대로 골 맛을 보며 자신감도 찾았다.
보다 튀기 위해 헤어스타일도 바꿔보려고 했다던 그는 “머리보다 필드 위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취재차 오스트리아를 찾은 영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마이크 던젤은 “북한축구를 실제로 처음 접했는데 23번(정대세)의 플레이가 예사롭지 않았다.이변이 북한이 속한 G조에서 일어날 수 있다면 저 친구가 큰 역할을 할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알타흐(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