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월드킥… 훌쩍 큰 대한민국

입력 2010-06-14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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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세대’의 유쾌한 도전]
Soccer 즐기는 축구
Self-confidence 자신감 충만
Strength 힘이 넘치며
Smart 영리한 그들

또 한번 ‘코리아 신화’ 기대

“예전엔 경기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죠. 선수들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어 있으니 패스할 곳이 없었어요.”(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제가 월드컵에 나갔을 땐 경기를 앞두고 라커룸이 조용했어요. 선수들 모두 너무 긴장해서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았죠.”(차범근 SBS해설위원)

예전엔 이랬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만 해도 이런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녹색 그라운드를 밟기 직전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즐겁게 놀아 보자.”


○ 유럽도 안 무섭다…당당한 그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노리는 태극전사들이 1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치러진 경기인 데다 상대는 우리가 원정지에선 맥을 못 추는 덩치 큰 유럽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태극전사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뒤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상대를 압도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리스 공격수 요르고스 사마라스(셀틱)는 “한국은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여기서부터 지고 들어갔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러한 자신감의 중심에는 1985년 이후 태어난 ‘S세대’가 있다. 박주영(25·모나코) 이청용(22·볼턴) 기성용(21·셀틱) 정성룡(25·성남) 이승렬(21·서울) 김보경(21·오이타) 강민수(24·수원) 등이 그 주인공.

그리스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박주영은 상대 수비를 달고 다니며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장신 수비수들을 상대로 헤딩 볼을 따내 동료에게 찬스를 제공했고, 날카로운 침투로 수비진을 교란했다.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6개의 슛을 날려 3개를 유효슈팅으로 연결하며 공격을 이끌었다.

‘쌍용’ 이청용과 기성용의 활약도 여전했다. 이청용은 빠른 발과 현란한 드리블로 그리스 측면 수비진을 무너뜨렸고, 기성용은 정교한 패스와 프리킥으로 ‘허정무호의 황태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정성룡의 활약도 눈부셨다. 후반 결정적인 슈팅을 막아내는 등 경기 내내 안정된 모습으로 골키퍼 세대교체를 알렸다. 이승렬은 이날 경기 종료 3분을 남기고 들어가 많은 기회는 없었지만 언제든지 출격 가능한 ‘신예 병기’. 김보경 강민수 등도 진작부터 허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자원이다.


○ V세대의 밴쿠버 쾌거…우리가 잇는다

S세대의 S는 ‘Soccer(축구)’ ‘Self-confidence(자신감)’ ‘Strength(힘)’ ‘Smart(영리하고 활기찬)’ ‘Serenity(차분함)’ 등을 상징한다.

이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보며 꿈을 키웠고, 어릴 때부터 유럽 축구 등 선진 축구를 자연스럽게 접하며 몸에 익혔다. 또 성적 위주의 학원 축구 그늘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을 차기 시작한 세대다.

S세대는 하나같이 자신감이 넘친다. 훈련장에선 집중력 있게 훈련을 하되 여유를 잃지 않는다. 큰 경기를 앞두고는 긴장감마저 재미로 승화시킨다. 이영표는 “한마디로 대범하다. 우리 때와 비교하면 참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신기하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아무리 강팀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선배들이 이런 후배들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자신감으로 재무장하게 된다”고 전했다.

‘베이비붐 세대(6·25전쟁 직후에 태어난 세대)’인 부모들의 희생 속에 비교적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며 다양한 경험을 한 덕분에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것도 특징이다.

이들은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좌절하기보단 냉정하게 문제점을 찾고 다시 일어선다. 지난달 약체로 꼽히던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패배한 직후 이청용은 이렇게 말했다. “아쉽지만 실망스럽진 않습니다. 경기 내용을 분석해 잘못을 찾아 고친다면 오늘 패배는 더 큰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니까요.”

올해 초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선 김연아(피겨), 이정수(쇼트트랙),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이상 스피드스케이팅) 등 이른바 ‘V세대’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용감하고(Valiant), 다양한(Various) 창의성과 생기발랄한(Vivid) 모습으로 국민에게 기쁨을 줬다. 이번 월드컵에선 S세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다시 한 번 ‘코리아’로 전 세계를 물들일지 지켜보자.

포트엘리자베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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