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김진회기자의 월드컵동행기] ‘2전3기’ 끝에 월드컵 출전 한 푼 ‘사자왕’ 이동국

입력 2010-06-17 22: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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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만이다.

비록 짧은 출전시간이었고 공격 포인트도 없었지만 그에게 10대의 나이로 출전했던 지난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다시 선 월드컵 무대는 감격스럽기만 했다.

‘사자왕’ 이동국(31.전북)이 ‘2전3기’ 끝에 월드컵 출전의 한(恨)을 풀었다.

이동국은 17일(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B조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 후반 38분 박주영과 교체 투입돼 10분여를 소화했다.

이날 아르헨티나전에 나서기까지 이동국의 축구인생은 평탄하지 못했다.

1998년 프로 데뷔 후 차범근 감독의 눈에 들어 그해 5월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동국은 2000년 2월18일 코스타리카와의 골드컵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면서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이동국의 두 차례 월드컵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게으른 천재’라는 오명을 얻으며 월드컵 출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후 이동국은 부산아시안게임 멤버로 참가했지만 금메달을 따내지 못하면서 광주 상무에 입대해야 했다.

상무에서 두 시즌 동안 뛰면서 정규리그에서 15골을 터트리며 부활의 날개를 폈던 이동국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예선에서 맹활약했지만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두고 K-리그 경기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또 다시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독일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복귀한 이동국은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의 중징계로 1년간 대표팀 자격 정지를 당했다. 심지어 이듬해 포항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미들스브러로 이적했지만 방출명단에 오르면서 국내무대로 유턴해야 했다.

K-리그 복귀 후에도 1년간 자리를 잡지 못했다. 큰 기대 속에 성남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 전북으로 둥지를 옮겼다.

‘저니맨’으로 낙인이 찍혔던 이동국은 절치부심 지난해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월드컵 최종명단 합격판정을 받기까지도 힘들었다.

예상을 깨고 월드컵 26인 명단에 들었던 이동국은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최종명단 포함이 불확실했다.

그러나 유럽 전지훈련 기간 재활에 몰두했던 이동국은 허심을 잡는데 성공해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이어갔다.

그리고 6월17일. 드디어 이동국은 월드컵 그라운드를 밟으면서 ‘비운의 스트라이커’란 꼬리표를 뗐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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