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부침주.’(破釜沈舟)
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뜻이다. 즉,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지 않고 결사적 각오로 싸우겠다는 굳은 결의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참패를 당한 허정무(54) 감독이 ‘파부침주’의 자세로 나이지리아전을 준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허 감독은 18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러스텐버그의 올림피아파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 선수들은 낙담하고나 실망하지 않고 있다. 애초부터 나이지리아전을 최후의 승부처로 생각하고 있었다. 철저한 준비를 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를 통해 잘된 점, 고쳐야 할 점 등을 선수들에게 이야기했다. 추긍이 아니라 앞으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며 “나이지리아도 쉬운 상태가 아니다. 처음부터 16강 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파부침주’의 자세로 마지막 경기를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에게 1-4로 대패했지만 16강 가능성은 아직 높은 상태다. 전날 조 최약체로 평가받던 그리스가 아프리카의 강호 나이지리아를 2-1로 꺾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한국이 나이지리아를 이길 경우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기더라도 골 득실차를 따져야겠지만 현재 한국이 그리스(-2)를 1골 차로 앞서고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무엇보다 나이지리아의 오른쪽 미드필더 사니 카이타가 불필요한 반칙으로 퇴장 당해 한국과의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왼쪽 풀백 자원이 모두 부상을 당해 수비진에 비상이 걸렸다. 주전 타예 타이워가 후반 10분 허벅지 근육을 다쳐 교체 아웃된 데 이어 백업선수인 우와 에치에질레도 그라운드에 나선 지 22분 만에 부상으로 쓰러졌다. 상대 주전선수의 퇴장과 부상 소식은 한국에게 희소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허 감독은 방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나이지리아의 카이타 선수가 퇴장당해 그리스가 깜짝 승리를 안았지만 야쿠부 아예그베니를 비롯해 이케추쿠 우체 등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있다. 절대 방심하지 않고 경기흐름을 지배하고 상대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 멋진 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것이 허 감독이 강조한 내용.
배수의 진을 치고 허 감독은 공격적인 전술로 나이지리아의 허점을 파고들 공산이 크다. 이에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전반 무실점 이후 메시를 봉쇄하려고 했다. 이용표를 전담마크맨으로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후반 경기흐름이 좋았고 너무 공격적으로 나간 것이 패인이었다. ‘뒷문을 열어놓고 사냥나간 격’이었다”고 설명했다.
허 감독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오범석(울산)을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투입시켰다. 그러나 1-4로 패한 뒤 누리꾼들은 그리스전 맹활약한 차두리(프라이부르크)를 뺀 것에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허 감독은 “한 선수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체적인 팀의 문제였다. 염기훈이 득점기회를 놓쳐 경기흐름을 끌고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면서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어떤 선수가 적합한 지 고려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자책골로 참패의 빌미를 제공한 박주영에 대한 질문에는 “집중력의 문제였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자세한 것을 추궁하면 선수가 경기장에 나가 어떻게 마음 놓고 플레이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허 감독은 나이지리아를 꺾을 해법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상대가 개인기량이 뛰어나고 그리스, 아르헨티나와는 또 다른 스타일이다. 아프리카 특유의 상대를 짜증내게 만들고 강한 압박을 펼칠 것이다. 또 상대가 수비 시 벽을 형성하기는 하지만 압박이 없다는 점도 이용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실전에서 상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허 감독은 “꼭 비기겠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하지 않겠다. 끈질기게 가능하면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 수비를 철저하게 한 뒤 역습을 펼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스텐버그(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