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김진회기자의 월드컵동행기] 한국축구, 56년의 인내로 역대 원정 월드컵 참혹 씻어내

입력 2010-06-23 05:5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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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전과의 후반전 경기에서 박주영 두번째 골을 넣은 넣은 뒤 환호하고 있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56년의 한(恨)을 풀었다.

허정무(54)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오랜 염원이었던 원정 월드컵 16강의 쾌거를 이룩하며 그간 타 국가에 열렸던 대회에서 당했던 수모를 말끔히 씻어냈다.

허정무호는 23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 더반의 모세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예선 B조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전반 12분 칼루 우체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38분 이정수의 헤딩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후반 4분 박주영이 프리킥 역전골을 터뜨렸지만 후반 24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동점골을 허용해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은 1승1무1패(승점 4.골득실 -1)를 기록, 이날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3승.승점 6)가 그리스(1승2패.승점 3)를 꺾어줌에 따라 16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의 역대 원정 월드컵 역사는 참혹했다. 머릿속에 승리보다 패배의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쉬울 정도였다.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토고를 꺾은 것이 유일한 승리였다.

한국은 처음으로 참가한 월드컵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1954년 6·25전쟁 이후 한국 스위스월드컵에서 출전했지만 터키와 헝가리에게 각각 0-7, 0-9로 패하고 조별예선에서 탈락했다.

32년 뒤에도 한국은 멕시코대회에서 1무2패의 성적으로 16강 탈락 통지서를 받아야 했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우루과이를 비롯해 스페인, 벨기에를 맞아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3패로 귀국 행 비행기를 탔다.

어느 정도 세계축구와의 거리를 좁혀가던 한국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2무1패로 16강 진출 실패의 아픔을 맛봤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처녀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에서 16강 진입에 성공하면서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한국은 자존심을 구겼다. 게다가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네덜란드에게 0-5로 참패하며 축구변방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한국 축구는 발전하기 시작했다.

조별예선에서 2승1무로 사상 첫 조별예선을 통과했던 한국은 이탈리아, 스페인 등 축구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며 4강 신화를 창조했다. 이 여세를 몰아 원정 16강의 목표를 이루려던 한국은 4년 뒤 독일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첫 승을 하고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16강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리고 4년 뒤. 아프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에서 한국은 결국 원하던 목표를 달성했다. 그리스와의 1차전을 2-0으로 승리해 첫 단추를 잘 꿴 한국은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1-4로 크게 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 승부를 펼친 끝에 최종전에서 나이지리아를 꺾으며 16강 퍼즐을 완성했다.

이날 허정무호가 달성한 쾌거는 역대 대회에서의 패배를 보약 삼아 56년간 인내한 끝에 얻어낸 것이라 더욱 값질 수밖에 없었다.

더반(남아공)=김진회 동아닷컴 기자 manu3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전영한 동아일보 기자 scoopjy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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