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가 PC의 필수 입력장치로 자리 잡은 지 어느덧 4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마우스는 제록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워크스테이션의 그래픽 환경을 제어하는 포인팅 도구로 개발되었다. 그 후 유닉스와 같은 특수 운영체계(OS)에서 보조 도구로 사용되다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가정용 PC에 주요 입력도구로 채용되면서 급속도로 그 위치가 격상된 장치이다.
초창기의 제록스에서 만든 마우스
이 기나긴 시간을 지나면서 마우스는 몇 차례 변화를 겪었다. 바닥의 구슬을 굴려 회전량으로 움직임의 방향과 크기를 인식하던 볼 마우스는 어느새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그 자리에는 적외선을 비롯한 빛을 쬐어 반사되는 재질을 스캔하여 움직임을 인식하는 광마우스가 들어앉았다. PC와 연결하는 방식도 패러렐/시리얼(25핀/9핀) 포트에서 PS/2를 거쳐서 현재는 USB 포트가 기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마우스의 기본적인 용도와 형태, 구조는 거의 변화를 하지 않았다. 이미 그 구조로 완성에 근접되어 있는 입력도구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능성 제품으로 인터넷 서핑용 단축키가 장착되는 등의 발전은 일부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능 추가일 뿐, 마우스의 근본적인 체계에 변화를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되려 마우스의 변화는 그러한 커다란 이슈보다는 외형적으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과 내부적인 제조 품질 변화에서 찾아보기가 더 쉽다.
외형
Razer ABYSSUS
이번에 살펴볼 레이저 ABYSSUS(이하 어비수스)는 게이머를 위한 고급형 마우스다. 검은색 박스에서 보듯, 붉은 불길이 마우스를 휘감고 있는 모습은 흡사 게임 속의 던전에서 불길을 헤매는 게이머를 형상화한 듯하다. 박스부터 게이머를 의식한듯한 디자인이 상당히 화려하다.
게임 속에서 책자를 열어보는 듯한 구성이다
박스 전면의 커버는 열어볼 수 있는 형태로 되어 있는데, 물론 제품을 앞으로 꺼낼 수 없어 제품 겉모양만 확인할 수 있다. 제품은 박스의 위쪽 개봉구를 통해서 꺼낼 수 있다.
심플한 구성물
제품은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마우스와 매뉴얼만 들어 있어 기본기에 충실'하도록 한 제조사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독특한 디자인
마우스 본체는 제조사인 레이저 특유의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반영했다. 흡사 SF 영화에 나오는 차량이나 전차를 연상케 한다. 무광의 검은색 폴리우레탄 재질로 도포되어 중후한 감각을 전해주며, 손으로 쥐었을 때 미끄러짐을 최대한 방지해주고 있다.
후방부에는 레이저 로고가 새겨져 있는데, 이 로고는 마우스가 작동하면 푸른색 LED가 발광하여 어두운 곳에서는 그냥 놔두는 것만으로도 독특한 멋을 뽐낸다.
다른 기능 버튼이 전혀 없는 것 또한 게이머 마우스다운 선택이다. 최근 인터넷을 위해 페이지 이동이나 기타 단축키 버튼 등이 달린 마우스가 많이 나오는데, 어비수스는 이러한 버튼이 전혀 없는 전형적 3 버튼 휠 마우스 방식이다. 게임용 마우스에 기타 단축 버튼이 있어봐야 실제로는 사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으면서 거치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3 버튼 마우스가 표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도 3 버튼에 맞춰져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사실상 별다른 도움도 안 되는 단축키를 추가하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후방라인은 직선과 곡선이 녹아드는 듯한 구성이다
직선적이면서도 곡선적인 후방라인이 손바닥에 쏙 들어가도록 설계되어 있어, 팜 그립(Palm Grip, 손바닥과 손가락 전체를 마우스 위에 얹은 형태) 시 손안에 착 달라붙도록 하는 역할을 해준다. 안쪽으로 살짝 파이게 디자인된 버튼은 연타 혹은 잦은 이동 후의 연타 시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누르지 않도록 버튼 클릭 범위를 넓게 설계했다.
게임용 마우스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손에 쥐는 감각일 것이다. 팜 그립을 사용하는 사용자와 핑거 그립(Finger Grip, 손바닥을 마우스에 대지 않고 손가락 끝으로 마우스를 조작하는 형태)을 사용하는 사용자, 둘 모두를 만족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어비수스는 그러한 양쪽의 감각을 잘 배합한 제품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실제 쥐어보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사실 더 납작한 느낌이 든다
크기와 무게 또한 게이머의 손에 맞춘 듯한 인상을 강하게 준다. 낮은 몸체 높이와 굴곡이 많지 않은 디자인, 버튼이 아래쪽으로 숙여지지 않고 되려 앞으로 갈수록 위로 향하는 듯한 구성으로, 핑거 그립 방식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버튼 클릭을 할 때 손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무게는 필자가 사용해본 마우스들 중 손에 꼽을 만큼 가벼워 장시간 사용 시에도 손에 부담을 주지 않았다.
바닥면에는 광센서와 스위치 2개가 장착되어 있다
바닥면은 유광의 플라스틱 재질이다. 광센서 좌우로 인식 해상도와 폴링률(Polling rate, 마우스의 반응 속도) 변경 스위치가 장착되어 있는데, 이 스위치를 조작하면 사용 모드(일반적인 컴퓨팅 사용 시와 게임 시)를 손쉽게 변경할 수 있다.
빠른 반응 속도와 고해상도
레이저는 주로 게이머용, 그것도 프로 지향형의 입력 장비를 제작하는 업체이다. 우리나라 키보드, 마우스 시장에서 레이저가 차지하는 비율은 그리 크지 않겠지만, 그들이 가진 노하우가 필요한 특정 영역에서는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게임용 마우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응 속도이다. 한 때 프로 게이머들이 PS/2 인터페이스의 마우스를 즐겨 사용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는 USB의 폴링률이 125Hz였던데 비해서 PS/2 방식의 고급 마우스는 200Hz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반응 속도가 빠르면 마우스로부터 입력된 정보를 지체 없이 전달해주기 때문에, 1프레임의 차이로 생사가 갈리는 FPS 게임이나 재빠른 손놀림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어비수스는 놀랍게도 1,000Hz의 폴링률을 지원하고 있다. 125Hz의 기본적인 USB 마우스에 비해 거의 8배에 달하는 속도를 제공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문서 작업이나 인터넷 서핑 등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높은 프레임을 보이는 FPS 등의 게임에서 사용해 보면 그 현저한 차이가 피부로 와 닿는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어비수스는 바닥에 전환 스위치를 장착하고 있어서 표준 125Hz로 사용 하다가 FPS 등의 게임을 할 때만 간단하게 1,000Hz로 높일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마우스의 전송률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간단한 벤치마크 테스트를 통해 알아 보도록 하자. 마우스의 입력 데이터를 분석해서 보여주는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마우스를 움직였을 때 보여주는 반응속도를 보았다.
평균 8ms의 반응속도를 보이는 125Hz 모드
기본 125Hz 모드에서는 평균 8ms 정도의 반응속도를 보여준다. 즉 1초당 125번의 입력값을 받아서 PC에 전송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데이터를 전송하는 8ms 사이에 입력되는 값은 다음 전달값이 PC로 전송될 때까지 지연된다는 의미이다.
평균 1ms의 반응속도를 보이는 1,000Hz 모드
반면에 1,000Hz 모드에서는 평균 1ms 수준의 반응속도를 보여준다. 1초에 1,000번을 전송하기 때문에, 앞서 125Hz 모드에서 예로 들었던 일반 마우스(8ms 동안 다음 입력을 대기)에 비해서 어비수스는 1ms 이후 다음 입력값을 즉시 전송할 수 있으므로, 게임을 보다 정확하고 미세하게 조작할 수 있게 된다.
FPS 게임에서는 이러한 1ms의 차이로 인해 킬/데스 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어비수스와 같은 게임용 마우스가 게이머들에게 절실한 것이다.
인식 해상도(DPI, Dot Per Inch. 1인치에 들어가는 점의 개수)란 마우스의 광센서가 인식하는 해상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 해상도가 커질수록 인식하는 양이 늘어난다. 따라서 해상도가 높으면 마우스를 조금만 움직여도 마우스 커서가 빠르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FPS 게임에서 마우스를 패드 절반 정도만 움직여도 시야를 한 바퀴 회전시킬 수 있는 쾌적함은 게임 전용 마우스의 존재 이유를 확실히 깨닫게 해준다.
낮은 해상도보다 높은 해상도로 인식을 하면 움직임의 세세한 이동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어비수스는 450 / 1,800 / 3,500 DPI를 지원하며, 사용 중 언제라도 바닥면의 스위치를 통해 인식 해상도를 변경할 수 있다. 물론 최고급 제품에 비해서는 해상도 조정 단계가 3단계 밖에 안되지만, 중저가형의 제품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호화로운 기능이라 생각된다.
전용 프로그램
레이저 사에서는 전용 드라이버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USB로 연결해서 1,000Hz의 폴링률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마우스뿐 아니라 드라이버 등도 착실히 갖춰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레이저 사 홈페이지에서 최신 드라이버를 다운받아 설치할 것을 권장한다.
전용 프로그램의 모습
전용 드라이버를 설치하면 기타 관리 프로그램도 덤으로(?) 설치된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어비수스의 감도와 더블클릭 속도, 휠 속도 등을 변경하거나 각 버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또한 하드웨어적으로 해상도와 반응속도를 변경하고, 그에 맞춰 세부 조정을 할 수 있다. 윈도우 제어판의 마우스 설정과 큰 차이는 없지만, 보다 세세한 설정이 가능하다.
게임 테스트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어비수스를 사용해 게임을 해보았다.
정밀한 컨트롤이 목숨을 좌우하는 게임일수록 고급 마우스의 성능이 돋보인다
일단 워크래프트3와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통해서 전략시뮬레이션 계열의 게임을 플레이해 보았다. 테스트는 반응속도 1,000Hz에 해상도 3,500DPI로 설정해서 플레이를 실시했다. 게임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유닛 컨트롤을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지가 관건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어비수스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는 듯했다.
또한 유닛 컨트롤 시 일단 핑거 그립으로 마우스를 잡은 상태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 전체를 오갈 수 있기 때문에 손에 생기는 피로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LOL의 유닛 컨트롤에도 적합하다
마우스의 인식 해상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의 이동속도와 가속도만을 높일 경우에는 이동속도는 빨라지지만 그 대신 정밀한 조작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어비수스는 3,500DPI 해상도를 지원하여 정밀한 조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개별 유닛을 선택하고, 정확한 포인트에 행동을 지정해주는데 오차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반응속도의 경우는 필자가 8ms보다 빠른 세밀한 컨트롤을 인지할 정도로 감각적이지 못해 정확한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으나, 어비수스를 두 시간 정도 사용한 후 일반적인 마우스로 변경했을 때는 미묘하게나마 뻣뻣해지는 듯한 지연 현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
빠른 반응이 생명인 FPS 게임, 레프트4데드
FPS 게임인 레프트4데드와 아바(AVA)를 통해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레프트4데드의 경우는 워낙 적이 사방에서 나오는데다, 가만히 있거나 숨어서 싸우기보다는 적을 피해서 달리면서 좀비들을 해치워야 한다. 게다가 빠른 대응을 해서 주위의 적들을 최대한 빨리 해치워야만 게임의 진행이 원활해지는 형태인지라 마우스의 성능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실제 플레이해본 결과, 일단 해상도가 높아져 사격 시 적에게 착탄 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졌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또한 시점 전환이 훨씬 부드럽고 원하는 만큼 정확히 끊어서 이동할 수 있어 사각에서 공격을 받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특히 주위를 빠르게 정확히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감각이 완전히 바뀌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국산 온라인 FPS 게임 아바
온라인 FPS 게임인 아바는 온라인 대전을 통해서 테스트를 했는데, 일단 해상도를 높였기 때문에 세밀한 조준이 가능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 없는 강점이었다. 앞서 진행한 레프트4데드가 난사 중심의 게임인데 반해, 아바는 사람 대 사람의 대전이 중심이라, 그만큼 한 발 한 발의 정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단순 착탄률이 아니라 헤드샷 등의 원포인트 사격의 정밀도가 확연히 올라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절대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친구 4인과 2:2로 나뉘어 대전을 실시하여 나온 성적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각각 세 번의 플레이 후 얻은 평균치이다. 게임방의 일반 마우스로 평균 8 Kill 12 Death의 결과를, 레이저 어비수스로 변경하여 12 Kill 10 Death의 결과를 받았다(물론 이 결과는 플레이어의 실력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때는 1,000Hz의 반응속도라고 해서 크게 차이를 느끼긴 어렵지만, 다른 사람과의 대전에서는 충분한 플러스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높은 해상도와 빠른 반응속도로 인해서 컨트롤의 지연 현상이 최소화되는 것을 손끝보다는 결과로 확인해볼 수 있었다. 특히 FPS의 경우 게임 성적을 통해 뭔가 달라졌음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높은 해상도가 직접 컨트롤 방식에 실질적인영향력을 가지는 것에 비해서, 반응속도 변경은 의외로 그 차이를 직접 체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나 게임 실력이 우수한 게이머나, 동체시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비수스의 심연 속으로
게임용 마우스는 PC용 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입력도구이다. 게임기처럼 동일한 입력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PC는 입력 도구의 변경에 따라서 실력 차 이상으로 큰 결과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이 특별히 반칙이 아니라면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좋은 결과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게이머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레이저 어비수스는 회사 이름에 걸맞게 면도칼 같은 날카로운 조작감을 제공하는 제품이다. 거기에 인체공학적이고 감성적인 디자인이 더해져 게이머를 게임 속에 푹 빠져들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전의 레이저 제품군에 비해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선보이는 레이저 어비수스가 게이머 마우스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기대가 된다.
글 / 정내욱(erial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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