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Q|최성희의 ‘뮤지컬은 내인생’] 10대 소녀부터 80대 노파까지 목소리 변색의 달인

입력 2010-09-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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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성희.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성희.

■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여주인공 페기 소여역 최성희(바다)


최성희와 천의 목소리
어릴때 아빠한테 창 배우며 깨우쳐
아기-노인은 물론 귀신소리도 자신

바다와 최성희
최성희는 본명…일종의 브랜드전략
가수는 바다로, 뮤지컬은 최성희로

뮤지컬과 최성희
오페라유령 여주인공 캐스팅될 뻔
‘페퍼민트’ 할땐 바닥부터 기었죠


한 집 건너 하나씩 ‘원조’ 간판을 내걸고 경쟁을 하는 요즘이지만, 우리나라 ‘원조 걸그룹’이라면 S.E.S를 꼽는 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바다, 유진, 슈 3명으로 팀을 결성, 1997년 1집 음반 ‘아임 유어 걸(I'm Yor Girl)’로 데뷔한 S.E.S는 이듬해 데뷔한 핑클과 함께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걸그룹의 양대 산맥을 형성했다. 이때 S.E.S.의 리드 보컬을 맡아 ‘국민 요정’으로 사랑받았던 바다. 지금 그녀는 최성희란 본명으로 뮤지컬계에서 더 유명하다. 2003년 ‘페퍼민트’로 데뷔를 했으니 어느덧 뮤지컬 경력이 8년째에 이른다. 이제는 본업인지 부업인지 혼동이 되지만 가수 활동도 활발한 편이어서 지난해도 네 번째 독집 앨범과 디지털 싱글을 냈다.

최성희는 29일부터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의 여주인공 ‘페기 소여’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노트르담 드 파리’ 이후 1년 만, 뮤지컬 배우로서는 다섯 번째 작품이다.



서울 청담동의 한 헤어숍에서 만난 최성희는 이미 ‘페기 소여’와 절반쯤 ‘싱크로’되어 가고 있었다. 인터뷰 목소리는 밝고 명랑했으며, 힐을 신은 두 발은 종종 탭댄스 스텝처럼 움직였다.

“아직은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에요. ‘페기 소여’는 자기 이름처럼 ‘패기’가 있는 인물이랍니다. 어리지만 아주 당차죠.”

성숙한 느낌의 음색을 지닌 최성희가 스무살 또래의 앳된 목소리를 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목소리를 변색하는 일 하나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어린 소녀에서부터 80대 노파까지 자유자재란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창을 배우면서 노인 소리, 아기소리, 심지어 귀신소리까지 내는 법을 깨쳤다. “모창도 잘 하겠다”하니 “모창하고는 달라요”란다.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때 최성희는 1막에서 뚱뚱이 특수분장을 하고 나왔다. “만두 머굴래?”하고 잔뜩 코 먹은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1막의 뚱보가 그녀인줄 모르고, 날씬이가 된 2막에만 등장하는 줄 알았다. 당시 열심히 분장을 하고 했는데 “바다가 안 나오네?”하는 소리를 들으면 속이 상할 지경이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최성희에게 더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안겨 주었다.


● ‘오페라의 유령’ 제의 받아…높은 음역에 사양

그나저나 최성희는 왜 ‘바다’라는 익숙한 이름을 내려놓고 최성희라는 본명으로 배우 활동을 하고 있을까. 최성희는 “각자 다른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이라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바다’는 가수이자 철저한 엔터테인먼트 브랜드, ‘최성희’는 뮤지컬 배우이자 보다 아티스트적인 요소가 강한 브랜드라는 얘기였다.

물론 처음 뮤지컬에 나설 때는 바다라는 친숙한 예명을 썼다. 데뷔작 ‘페퍼민트’의 여주인공은 이름도 바다였다. 그러던 것이 다음 작품에서는 바다(최성희)가 됐고, 지금은 최성희(바다)가 됐다. 이런 식이라면 아마도 내년쯤에는 최성희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그녀는 지금까지 네 편의 뮤지컬 작품을 했다. 8년차 배우라는 경력을 고려하면 작품 수가 많다고 보기 어렵다. 작품을 고르는 그녀만의 기준이 있을 것 같았다.

“두 가지를 봐요. ‘이 작품을 했을 때,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게 기증이 되는가’.” ‘기증’에 대해서는 ‘정말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뜻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녀에 따르면 좀 더 일찍 뮤지컬과 인연을 맺을 수도 있었다. S.E.S에서 활동하던 2001년, 한국 초연을 앞둔 ‘오페라의 유령’ 측에서 여주인공 ‘크리스틴’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그때 기획사에서 S.E.S 멤버들을 모두 뉴욕으로 데리고 가 브로드웨이의 오리지널 공연을 보여 주셨어요. 그런데 왜 크리스틴이 부르는, 섬뜩할 정도의 고음이 뿜어져 나오는 부분이 백미잖아요. 신의 경지에 이른 소리. 딱 듣는데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키를 낮추면 하겠다’라고 했었죠. 하하!”

지금은 연예인 스타들이 뮤지컬에 출연하는 것에 대해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열려있는 편이지만, 그녀가 처음 뮤지컬에 입문하던 때만 해도 분위기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았고, ‘네가 뭘 알아’하고 슬쩍 아래로 보려는 이들도 있었다.

최성희는 그들에게 가수가 아닌, 뮤지컬 후배로 다가갔다.

“그땐 (옥)주현이도 없고 저 혼자였잖아요.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거니까. ‘페퍼민트’할 때는 제가 커피 다 타고, 신발정리 다 했어요. 하하!”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우리나라의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2007년 이후 1년에 한 작품 정도씩 했지만, 올해와 내년에는 좀 더 뮤지컬 무대에 자주 설 생각이다.

“최성희만의 ‘페기 소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공연이 시작될 즈음이면 100퍼센트 ‘페기 소여’가 되어 있을 거예요. 무대 위에서 바다는 사라지고, ‘페기 소여’가 노래하고 춤을 출 겁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고, 사랑해 주세요.”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성희.

뮤지컬 ‘브로드웨이42번가’ 공연 개막을 앞두고 연습에 몰두하고 있는 최성희.



● 최성희(바다)는?

1980년 2월 28일 경기도 부천 태생. 안양예고 재학 시절 SM엔터테인먼트에 발탁. 1997년 S.E.S의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솔로 1집 앨범을 냈던 2003년, 창작뮤지컬 ‘페퍼민트’에 출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데뷔. 한 동안 무대를 떠나 있다가 2007년 ‘텔미 온 어 선데이’로 다시 뮤지컬로 복귀했고, ‘미녀는 괴로워(2008)’, ‘노트르담 드 파리(2008ㆍ2009)’에 출연했다. ‘미녀는 괴로워’의 ‘한별’ 역으로 2009년 제3회 더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장소협찬|박준뷰티랩 청담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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