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화려한 은퇴’를 한 SK 김재현. 그의 아름다운 퇴장은 다음달 13일, 도쿄돔에서 열리는 한일챔프전까지 미뤄진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뒤 후배의 맥주 세례 속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김재현. 대구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도쿄돔서 챔프 먹고 헹가래 해야지”후배 위해선 야신과도 맞서는 대쪽SK 신영철 사장은 한국시리즈 도중 흥미로운 지적을 한 적이 있다. “KBO에서 발간하는 8개 구단 선수 소개 책자를 봤는데 역대 외국인 선수 현황은 나와 있지만 정작 역대 주장들이 누구인지는 없더라. 우승한 해에 주장이 누구였는지를 아는 편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자료 아니겠는가?”
신 사장이 이런 말을 꺼낸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SK 주장 김재현(35)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드러난 야구 통계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무형적 가치를 생각해줘야 될 선수”라는 얘기다.
SK 사람들은 김성근 감독을 두고 “무섭지는 않다. 그러나 어렵다”고 말한다. 못마땅하면 화를 내는 대신 외면해버리는 김 감독의 성향은 ‘자칫하면 나도…’라는 공포심을 준다. 김재현은 이런 김 감독에게 2010시즌 두 차례 직언을 한 적이 있다.
한 번은 SK가 16연승을 달리는 와중에서였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려와 너무나 지쳐있는 후배들을 위해 나서서 ‘월요일 휴식을 달라. 그러면 앞으로 더 잘할 것’이라고 제안했고, 실제로 김 감독은 그 청을 들어줬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직후 연승은 5월5일 어린이날 끊어졌고, 김 감독은 수염을 깎아야 했다. 당시 16연승 후 1패였는데도 SK 선수들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던 것은 주장 김재현에 대한 미안함이 깔려있어서였다. 실제 김재현은 이후 몇 경기를 결장하는 무언의 징계를 당했다.
두 번째는 시즌 막판 나주환이 무리한 도루시도로 횡사해 감독의 분노를 샀을 때였다. 다시는 안 보겠다는 듯 김 감독은 나주환에게 훈련금지를 시켰다. 이때 김재현이 직접 김 감독과 독대해 주장으로서 용서를 구했다. 김 감독의 화는 부산에 내려가서야 가까스로 누그러졌고, 나주환은 김재현에게 ‘앞으로 또 그러면 죽는다’라는 한마디로 선수단 전체의 용서를 얻었다.
선수단에서 김재현의 인망은 그저 야구 잘한다고 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김광현 등 새카만 후배들이 꼭 우승시켜드리겠다고 공언하는 정서를 이해해야 SK라는 팀이 보인다.
김재현은 은퇴를 공언했음에도 대만, 일본과의 아시아시리즈 출장을 먼저 밝혔다 “광저우아시안게임으로 7명이 빠지니까 나라도 가야 된다”고 했다. “끝날 때까지 혼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김 감독의 의중을 먼저 읽은 것이다. 김재현의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력 7명이 빠졌음에도 SK는 필사적으로 싸울 이유가 생겼다. 마지막 게임이 될 11월13일 도쿄돔에서 ‘영원한 캡틴’ 김재현의 헹가래를 해주기 위해서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