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의 유럽 연수기] “나도 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 ‘호랑이’ 버리고 ‘덕장’되고파”

입력 2010-11-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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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 과학관에서 육영재단 정해성축구아카데미 창단식이 열렸다. 정해성 전 국가대표팀 수석코치가 유소년들과 미니 게임 전에 간단한 훈련을 하며 몸을 풀고 있다. 사진|국경원 기자onecut@donga.com

2차 연수 막 시작하려는데 전남 감독 제의
돌아가는게 맞다 한국행 비행기에 몸 실어

유럽서 배운 유소년 축구시스템 도입 최선
2군 감독·코치 만들어 초중고교 선수 육성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영국 런던으로 가서 한국시간으로 10월 31일 (박)지성이가 출전한 맨유- 토트넘 경기, 11월 1일 (이)청용이가 나섰던 볼턴-리버풀 경기를 보고 지인들을 만나며 짧은 여유를 보내고 있었던 때였다.

스페인으로 돌아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2차 연수를 시작하려는데 4일 새벽 함께 일하자고 전남 드래곤즈에서 연락이 왔다. 당초 연수 기간을 6개월로 생각했으니 일단 ‘돌아가는 게 맞다’는 판단에 구두로 짧게 대화를 나누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됐다.

전남은 내가 거스 히딩크 감독을 도와 2002한일월드컵을 준비하기 전까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3년, 2003년 한 시즌 동안 총 4년 간 코치로 봉직했던 고향과도 같은 팀이다.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컸고, 감회가 새로웠다.

물론 코치로서의 과거 4년과 팀의 수장으로서 보내게 될 향후 2년은 큰 차이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팀을 꾸려야 할지, 어떻게 시스템을 정비할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FC바르셀로나 연수 때 꼼꼼히 기록해둔 메모들을 들춰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28일(한국시간 29일 새벽 5시) 바르셀로나 누 캄프에서 열릴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펼칠 ‘세기의 대결’이 자꾸 머리를 맴돌았다. 암표가 무려 800유로에 달한다는 데, 이미 호주머니에는 전망 좋은 좌석이 배정된 입장권이 들어 있었기에 솔직히 축구인 입장에서 너무 아까웠다.

그래도 어쩌랴. 하늘은 인간이 바라는 모든 걸 동시에 주시지 않는 것을…. 전남 구단에선 내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엇보다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빼놓을 수 없겠다. 구단과 계약을 하며 유소년 시스템 정비를 하겠다고 했고, 구단 측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바르셀로나에서도 가장 유심히 지켜본 부분이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펄펄 날고 있는 백승호 군이 그토록 잘 성장할 수 있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르셀로나 클럽이 가장 자랑하는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의 영향이 크다.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2군 감독과 코치 보직도 만들기로 했다. 솔직히 A팀 선수단을 꾸리며 초중고교를 일일이 움직이도록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2군 감독이 유소년 육성까지 두루 관리하게 할 생각이다.

전남 감독에 선임됐다고 하자 주위에서 ‘정해성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신다. 사실 코치를 하는 동안 선수들에게 좋은 소리보다 호통을 더 많이 치다보니 ‘호랑이’와 ‘강성’에 무게가 쏠렸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다.

리더의 부류에는 지장, 덕장, 용장이 있다는데 굳이 꼽으라면 덕장이 되고 싶다. 선수들과 거리를 좁혀 언제든지 서로가 개인사를 얘기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겠다.

적극적인 스킨십이라는 표현을 쓰면 조금 이상하려나? 하지만 예전의 경험을 비쳐볼 때 역시 벤치와 선수단이 얼마나 거리를 좁히느냐가 성과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되돌아온 K리그가 참으로 기대된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그래도 자신 있다. 그간 부족한 스페인 연수기를 읽으며 많은 격려를 해주신 스포츠동아 독자들이 성원해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다.

정해성 전남 드래곤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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