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The Fan] 단발머리 소녀에 꿈 심어준 볼 하나

입력 2011-01-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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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중학생 시절에 만난 내 친구 E는 전교에서 유명한 한화 이글스 팬이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자율학습시간에 야구장 가는 묘미와 교복소매에 이어폰을 숨겨놓고 듣는 야구중계의 각별함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태동된 나의 야구사랑은 그렇게 그 친구로 인해 활짝 꽃피우게 되었다. 하필이면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학창시절에….

그러던 1991년에 한화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숙적 해태 타이거즈와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한화팬들은 비장한 결의에 차있었고 특히 송진우 투수의 열성 팬이던 친구는 그가 우승의 주역이 될 거라고 장담했다.

E의 영원한 영웅 송진우는 3차전의 선발로 나와 팬들의 묵직한 기대를 어깨위에 얹은 채 ‘퍼펙트게임’을 펼쳤다.

하지만 8회 2사 후 풀카운트에서 들어간 8번째 공이 석연치 않게 볼로 선언되면서 퍼펙트게임이 깨지고 다음 타자에게 안타를 맞아 노히트 노런마저 무산되더니 급기야 적시타 한 방으로 패전의 멍에까지 쓰고 만다.

무릎을 꿇고 경기를 보던 우리들은 분을 못 이겨 부들부들 떨었고 급기야 친구는 통곡을 시작했다. 그때 그 순간 중계방송에서 흘러나오던 캐스터의 한마디를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풀카운트에서의 그 공 하나가 이렇게 운명을 가르는군요. 제가 야구중계를 오래 했습니다만, 오늘 귀중한 교훈을 하나 배웠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 돌이켜보니 그때 그 공 하나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퍼펙트게임은 아직도 한국프로야구사에 전인미답의 기록으로 남아있고 결국 빙그레 이글스는 단 한번도 우승을 하지 못하고 한화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나는 지금까지 한화를 끈질기게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 그토록 서럽게 울어대던 내 친구는 그날을 계기로 꿈을 이뤘다. 당시 그녀의 장래희망은 아나운서였지만 자신에게 버겁다고 생각해서 막연하게 그려보는, 실체도 향기도 없는 꿈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그날 이후 변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아나운서가 되어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겠다고, 그래서 송진우 선수를 만나 그의 경기를 어떤 마음으로 지켜봤는지 말해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 후 정말로 그녀는 모 방송사의 아나운서가 되었고 송진우 선수가 200승을 거둔 2006년의 어느 여름날 그 방송사의 특집프로그램에서 송진우 선수를 인터뷰하는 내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푸르른 한밭야구장의 한가운데 그와 마주보고 앉아 감격에 겨운 나머지 파들파들 떠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나는 배를 쥐고 웃었다. 나중에 그녀는 내게 그날이 자신의 아나운서 생활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으며 이제는 원도 한도 없다고 눈물을 글썽거려 끝내 나를 울리고 말았다.

가끔 생각해본다. 그 시절의 야구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고단한 청춘을 버틸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마음 둘 곳 없는 그 시절 단 하나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절의 야구는 어리고 치기 가득했던 우리들이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소 엉성하고 투박해서 우리들이 사랑했던, 그 때의 우리들을 닮은 그 시절의 야구가 가끔 참 눈물나게 그립다. 어쩌면 아직 꿈이란 걸 가져볼 수 있었던, 이제는 가버린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구율화 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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