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스포츠동아가 마련한 송년회에서 이효봉 해설위원을 만났다. 평소 해박하면서도 신중하고, 날카로우면서도 사려 깊은 해설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 위원은 이날 저녁 기어코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를 던졌다.
“전 프로야구 선수들은 공부로 치면 서울대 학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서울대 내에서도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그 학생더러 공부 못한다고 비난을 할 수 있겠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도 야구팬은 아는 만큼 욕설과 비난이 늘어난다. 처음 야구를 보기 시작할 때는 그저 예쁘기만 했던 내 팀이건만, 시간이 지나고 내공이 좀 쌓인다 싶으면 왜 그리 답답한 구석이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그리도 자랑스럽던 4번 타자는 왜 어이없는 공에 번번이 헛스윙인지, 유망주들은 대체 언제쯤 사람 구실을 해줄 건지, 감독의 투수 교체 타이밍은 왜 매번 저 모양인지. ‘에라, 니들이 응원해라. 내가 야구할게’ 등등의 자학성 막말이 늘어 가고, 가끔은 이런 내가 야구를 꽤 많이 아는 골수팬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로 선수들에게 좀 미안해질 때면 듣기 좋은 말로 포장을 한다. “이게 다 너희들을 아껴서 욕도 하고 그러는 거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누가 나에게 그들을 욕할 권리를 주었을까. 선수는 팬의 사랑으로 존재한다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때는 정을 거두고 돌아서면 그만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욕설하고 비난한다 해서 그것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학창시절에 ‘사랑의 매’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어떤 거부감을 주었던가. 어쩌면 나도 딱히 선수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대단히 사랑해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기분을 상하게 한 화풀이를 모질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흔히 프로야구 선수의 연봉에는 욕과 비난을 듣는 대가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한다. 참 잔인한 표현이다. 그리 본다면 우리가 직장에서 받는 급여에도 상사로부터 당하는 질책과 모욕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상사는 당연히 나를 비난하고 모욕해도 되며, 과연 나는 그 모든 감정적인 소모와 상처를 금전으로 환산해 가며 아무렇지도 않게 감내해야 한다는 말인가.
행여 답답하고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질지라도, 강물은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흐르고 있다. 그러니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는 말자. 어느 날 갑자기 그 강물이 멈추어 버린다면 가장 마음이 아플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다.
[스포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