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홈즈 옆에 여자 왓슨? 뮤지컬 각색의 특별공식

입력 2011-07-2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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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인공 性을 바꾸고 2. 극적 긴장감 강조 3. 선악논리 배제

22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삼총사’.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지만 삼총사 멤버인 아라미스와 포르토스의 과거 이야기는 원작에는 없던 내용이다. 동아일보DB

《“셜록! 이 사건엔 뭔가 있어요.” 8월 6일부터 서울 동숭동 대학로 문화공간 필링 1관 무대에 오르는 창작 뮤지컬 ‘셜록홈즈’. 극 중 홈즈의 조수 역할을 하는 군의관 출신 왓슨의 대사다. 그러나 극에서 왓슨의 이름은 ‘제인 왓슨’. 원작과는 달리 여성이다. 현재 국내에서 공연하고 있거나 공연을 앞둔 뮤지컬 중 상당수가 대중적인 원작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지만 이처럼 원작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뮤지컬 각색엔 어떤 ‘공식’이 숨어 있을까.》
가장 대중적인 무대 장르로 꼽히는 뮤지컬에서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가 빠질 리 없다. 원작에 없다면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서라도 남자 주인공과 짝지어 준다.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지킬 앤 하이드’가 대표적. 극 중 지킬을 짝사랑하는 술집 무용수 루시와 지킬의 약혼녀로 등장하는 엠마는 원작인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는 나오지 않는다.

1888년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실제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잭 더 리퍼’도 극 중 남자 주인공 다니엘의 상대역 글로리아와 수사관 앤더슨의 옛 연인인 폴리는 실제 사건에선 나오지 않는 가공 인물. 하지만 이 여성 캐릭터들 덕분에 뮤지컬의 스토리라인이 좀 더 다채롭고 촉촉해진 것은 당연하다.

‘셜록홈즈’는 원작 캐릭터의 성전환까지 서슴지 않은 경우. 이 작품을 각색하고 연출한 노우성 씨는 “원래 왓슨은 부족한 홈즈를 보살피는 캐릭터다. 성(性)을 바꿔 더 엄마 같은 인물로 부각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두 사람의 러브신은 없다.

뮤지컬 ‘삼총사’는 여자 스파이 밀라디를 원작에서보다 훨씬 비중 있는 인물로 격상시켰고, 2003년 귀여니 소설을 토대로 한 창작 뮤지컬 ‘늑대의 유혹’은 원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을 대부분 생략하고 평범한 여고생 한경만 남겨 남자주인공 해원, 태성과 삼각관계를 맺는 것으로 그렸다.

 

앞뒤 맥락이 분명치 않은 원작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하거나 밋밋한 캐릭터를 흥미롭게 바꾸기도 한다. ‘지킬…’의 경우 지킬 박사의 선악 분리 실험은 원작에선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공연에선 아버지의 정신병 치료를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삼총사’는 원작에선 삼총사의 멤버 아라미스를 신학도 출신으로 짧게 언급하고 포르토스의 과거에 대해선 설명이 없다. 하지만 뮤지컬에선 오페라 가수(아라미스)와 해적 출신(포르토스)이라는 흥미로운 이력을 삽입해 이들의 성격과 행동에 더 개연성을 부여했다.

‘늑대의 유혹’은 원작에선 주인공 태성이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뮤지컬에선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해원을 빼앗긴 것에 앙심을 품은 본재에게 공격을 받아 죽음 직전까지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서윤미 작가는 “태성이 갑자기 심장병에 걸려 죽는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떨어져 본재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셜록홈즈’는 여러 명의 의뢰인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홈즈가 파헤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이는 원작에 없다. 미국 과학수사물 ‘CSI 마이애미’ 같은 정교하고 논리적인 범죄 드라마에 익숙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좀 더 복잡한 사건을 만들어 냈다.

원작이 강조하는 흑백이나 선악의 단순 논리를 깨는 일도 뮤지컬에선 자주 시도된다. ‘가치의 혼돈’이라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킬 앤 하이드’는 원작에선 하이드에게 무차별적으로 희생되는 선량한 시민들을 위선적인 귀족들로 바꾸었다. 뮤지컬 ‘잭 더 리퍼’는 극 전개상 주요 인물인 신문기자 먼로를 돈을 밝히는 세속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먼로는 범인을 잡도록 수사관 앤더슨을 자극하는 인물로 앤더슨에게 “(기삿거리) 한 건당 1000파운드! (범인을) 최대한 늦게 잡아”라고 속삭인다.

‘셜록홈즈’는 홈즈를 단순한 영웅이 아닌 인간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으로 부각시켰다. 이는 배트맨 시리즈의 ‘다크 나이트’처럼 영웅을 다루는 영화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설정이다. 노우성 연출은 “홈즈는 사건이 없을 때 집안에서 총질을 하고 필요에 따라 잔인해질 수도 있는 인물이다. 요즘 관객들이 좀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현대적인 캐릭터로 그렸다”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주효선 인턴기자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예술경영)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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