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하늘은…

입력 2011-07-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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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은 영화 ‘블라인드’에서 시각장애인 역을 맡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낸다. 국경원 기자 (트위터@k1isonecut) onecut@donga.com

■ 영화 ‘블라인드’의 그녀,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새침데기 같은데 털털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엔 당할 자가 없으며
진중한 연기에 더 매력 느끼는 욕심쟁이
그리고 연애는 간절하지 않다고 덤덤히 말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실감했다. 연기로 표현해내는 캐릭터가 살갗처럼 몸에 와닿기는 쉽지 않은 법. 눈을 뜬 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찾아 헤매는 절실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이처럼 진중한 캐릭터를 연기한 게 얼마 만인가. 2004 년 공포영화 ‘령’과 멜로영화 ‘빙우’ 이후 처음인 듯싶다. ‘7급공무원’ ‘6년째 연애중’ ‘청춘만화’, 더 거슬러올라 ‘그녀를 믿지 마세요’까지 로맨틱한 이미지로만 비친 듯한 경험 속에서 쉽지 않은 선택이긴 했다.

8월11일 개봉하는 영화 ‘블라인드’(감독 안상훈·제작 문와쳐) 속 시각장애인 역은 하지만 ‘꼭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일 것 같았다. 뺑소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시각장애인.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으로만 사건 현장에 대해 증언하고 진술해야 하는 시각장애인과 또 다른 목격자가 펼쳐내는 연속되는 긴장감의 이야기. 그래서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캐릭터였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단순히 매력 있는 혹은 사랑스러운 캐릭터였기 때문이 아니다. 해야 하고, 하고 싶고 그래서 더더욱 해야만 하는 캐릭터가 있는 법이니까. 직전의 드라마 ‘로드 넘버 원’이 남겨준 잔향도 영향을 미치긴 했다. 전쟁통의 와중에 가슴 아픈 사랑에 빠져들었던 여자. 그 진중한 정서를 어느 정도 더 가져가고 싶었던 욕망. 이젠 좀 더 정교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블라인드’의 촬영이 끝나던 날, 얼마나 짜릿했던가. 스스로 고민도 많았고 그래서 현장에서 더욱 치밀해야 했다. 연기를 펼치는 촬영의 현실에선 눈으로 보지만, 설정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했다. 채 경험해보지 못한, 보지 못하는 이의 고통과 외로움, 그러면서 겪어내야 하는 잔인한 사건의 와중에 수없이 ‘잘 할 수 있을까’란 질문도 던졌다. 그런 끝에 ‘해내고 말았다’는 쾌감에 짜릿했다.

잠시 잠깐, 허술한 구석을 드러낼 때 느껴지는 막막함도 없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던 게 아닐까. 그래도 그 허술함이란 스스로 채근하지 않고, 쪼지 않는 데서 오는 자연스러움일지 모른다.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관심을 드러내지 않아서인 까닭일까. 그래서 간혹 차가운 이미지를 주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그런 스타일이 아니므로 괘념치는 않는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건 질색이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면 더욱 좋으련만.

데뷔 직후의 어린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주변에 대한 고마움. 서로 잘 되기를 바랄 터인데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 속에도 이성의 친구가 있을 터이지만, 아직은 그럴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애를 해본 지 언제던가. 하지만 또 그렇다고 간절하지도 않으니, 어쩔 텐가.

그래, 모든 일에 간절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왜냐고? 겁이 나기 때문이다. 간절함이 곧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망한 날도 숱했다. 지금보다 더 성숙해진다면 그 간절함의 실체, 무엇보다 일상의 것들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날까.

그 간절함으로 울어본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더 큰 고통이었음을 알게 된 것도 오래지 않는다. 그 어린 시절 대체 왜 그토록 많이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울어도, 울어도 해소되지 않았던 그 무엇. 그래서 간절함은 더 이상 올가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오해하지는 마라. 세상과 사람과 일에 대한 기대감을 말하는 게 아니므로. 그런 기대감 마저 없다면 건조해서 세상을 어찌 살 텐가. 다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할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성숙해져가는 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 나는 김하늘이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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