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사상 첫 장애인 앵커에 뽑힌 시각장애 이창훈 씨

입력 2011-07-26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손으로 읽고 목소리로 전달 뉴스 속보 대응도 문제 없어”
“장애인이 아니라 열정과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KBS의 사상 첫 장애인 앵커에 52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이창훈 씨(26)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잘 생겨서 합격했다고 하던데… 사실 제가 잘 생겼는지, 본 적이 없어 잘 모르잖아요(웃음). 평소대로 자신감을 갖고 시험을 봤는데 그런 모습이 평가받은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이 씨는 유머와 재기가 넘쳤다.

경남 진주에서 1남 3녀 중 외아들로 태어난 이 씨는 생후 5개월 때와 9세 때 두 차례 뇌수막염을 앓은 뒤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한때는 팔다리도 쓰지 못해 주변 사람들이 이 씨의 부모에게 양육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빛맹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활동하고, 밴드에서 트럼펫 주자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해 왔다. 그는 2월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재 한국시각장애인인터넷방송(KBIC)에서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이 방송국에서 토크쇼와 인터넷스포츠게임 중계 등을 맡으며 다양한 방송 경험을 쌓아 왔다. “사실 제 목소리는 심야용인데… 하하. 사회복지를 전공했다는 이유로 주로 보도 쪽을 많이 맡았죠.”

이 씨는 점자단말기를 통해 뉴스를 점자로 변환해 손으로 더듬어 읽은 뒤, 목소리로 뉴스를 전달한다. 면접 과정에서 사전 연습 없이 시험 도중 원고를 주고 읽도록 하는 속보 대응력 테스트도 무리 없이 통과했다. 울림이 큰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번 장애인 앵커 오디션에는 ‘얼짱 수영 선수’로 유명한 장애인 수영선수 김지은 씨(28)와 ‘엄지공주’로 잘 알려진 윤선아 씨(32)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몰렸다. 채용 실무를 맡은 임흥순 보도국 과학·재난부장은 이 씨에 대해 “젊고 신선한 모습과 활기 넘치는 분위기가 사상 첫 장애인 앵커에 가장 잘 맞았다”고 말했다. KBS는 이 씨를 프리랜서 앵커로 채용해 3개월간 교육한 뒤 가을부터 뉴스 프로그램의 일부 코너 진행을 맡도록 할 계획이다.

출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묻자 이 씨는 지하철을 잘 타고 다닌다면서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KBS까지 혼자 가는 방법을 익히는 게 과제라고 했다. “이번 기회에 KBS 안팎의 시각장애인용 기반시설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가장 닮고 싶은 앵커로 KBS 9시 뉴스의 민경욱 앵커를 꼽았다. “제가 보지는 못해도, 잘 듣잖아요. 민 앵커는 뉴스의 톤이 다양해 뉴스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생동감 있는 목소리로 옆집 청년같이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앵커가 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우선 첫 장애인 앵커로 안착하는 게 과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배우고 느낀 걸 다른 장애인에게도 나누고 싶어요. 장기적으로는 장애인을 위한 방송 아카데미를 만드는 게 꿈이죠”라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