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스타들을 통틀어 가장 잘생기고 매력있는 몸의 한 부분을 하나씩 떼어내서 살펴보는 것도 무더운 여름날에 알맞은 심심풀이는 될 성싶다.’(1963년 7월31일 경향신문)
배우의 매력에 관한 기사이다. 서양의 배우들과 당대 한국 톱스타들의 매력을 신체부위별로 비교한 보도에서 ‘바스트’ 부문(?)에선 어땠을까.
‘바스트는 큰 것과 밸런스가 잡힌 것으로 나누어 지나 롤로브리자다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균형이 잡혀 소문난 편이고 맨스필드나 소피아 로렌은 지나치게 커서 둔한 편. 우리나라 여배우로는 김혜정 양이 어울리고.’(위 기사 인용)
1969년 오늘, 당대의 ‘글래머 스타’였던 김혜정이 은퇴를 선언했다. “인생 자체에 대한 피로감 때문에 오직 쉬고 싶어서”(1969년 8월6일 동아일보)였다.
“스스로는 연기파가 되기 위애 애를 써왔지만 제작자 측에서 오직 글래머로만 몰아세우는 바람에 연기다운 연기를 보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이어졌다. 관능미가 여배우가 지녀야 할 최고의 매력이자 미인의 새로운 기준으로 꼽히던 시절이었다.
1958년 ‘봄은 다시 오려나’로 데뷔한 뒤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김혜정은 실제로 한때 ‘100만 불 짜리’ (몸매의)균형을 지닌 배우로 불렸다. 한 감독은 김혜정의 은퇴 이후 관능적인 매력을 따라잡을 만한 여배우가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김혜정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글래머러스한 매력에만 머물렀던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잇따른 염문도 그녀를 괴롭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매력을 스크린에 제대로 투영할 만한 감독을 만나지 못한 불운을 아쉬워하는 시선도 많다. 김혜정 스스로 밝힌 은퇴의 변 역시 대중의 관음적 시선에 대한 항의였는지 모른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