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취재 인연 앞세워 입국장서 독대
신문 보여주자 “우리 둘 진짜 함께 있네”
“부상서 회복중이지만 멋진 레이스 선사”
“나를 알아보겠는가?”
기자가 1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번개’ 우사인 볼트(25·자메이카)에게 이렇게 묻자 그는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젖히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양손도 들어 올렸다.
“2009년 2월 자메이카 킹스턴의 내셔널스타디움에서 당신을 취재했었다”
“2009년이면 참 오래된 일이다.”(볼트)
“자 봐라. 그 때 찍은 사진으로 기사를 써 만든 동아일보 지면이다.” “오∼. 여기 진짜 내가 당신과 함께 있네.”(볼트)
볼트는 그래도 당시 기자를 만났는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도 그럴 일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된 뒤 수백, 수천 명의 기자를 만났을 테니…. 하지만 볼트는 당시(2009년 2월23일) 기사와 최근(7월 27일) e메일 인터뷰 기사로 만든 아크릴 판을 전해주자 반갑게 받으며 “고맙다. 최근 많은 선물을 받는데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정말 고맙다”며 연거푸 감사 표시를 했다. 기자는 2009년 자메이카를 취재하고 6개월 뒤 베를린 세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취재를 했지만 볼트를 단독으로 만나진 못했고 지구촌에서 온 많은 기자들과 함께 취재했다.
‘괴물’ 볼트가 왔다. 올림픽에 이어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자 100m(9초58)와 200m(19초19)에서 동시에 세계기록을 세우며 ‘외계인’으로 불린 볼트가 27일 개막하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대구공항을 통해 대구에 입성했다.
군청색 모자를 쓰고 ‘나는 넘을 수 있다(I can cross it)’라고 쓰인 파란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이 옷은 후원사 푸마의 스포츠 라이프스타일 셔츠로 ‘자신이나 기록을 뛰어 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볼트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모든 인터뷰를 거부한 채 당초 예정된 A입국장이 아닌 C입국장으로 빠져나가 공항 2층 라운지로 향했다. 기자는 이 사이 2년 전의 인연을 내세워 잠시 만나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영국 런던에서 10시간 넘게 비행하고 온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팬들이 “볼트다”라고 하자 특유의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밝게 웃었다. 지난해 5월 대구국제육상선수권대회 참가 차 왔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그는 “친절하고 정이 많은 대구 시민들을 다시 만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번 e메일 인터뷰 때처럼 “100m와 200m에서 타이틀을 방어하는 게 목적이다”고 말했다. 볼트는 아킬레스건과 허리 부상에서 회복 중이다. 그는 “타이틀을 방어하러 왔지만 멋진 레이스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사라졌다. ‘나는 넘을 수 있다’는 문구의 옷을 입고 온 것으로 볼 때 컨디션이 회복해 세계기록 경신에도 도전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볼트를 직접 보려고 기다리던 팬들은 볼트의 돌발 행동에 아쉬운 감정을 드러냈다.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하면서도 자원봉사자들의 티셔츠에 사인해 주기도 했다. 이번 대구 대회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할 예정인 황병욱(19) 씨는 “너무 기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육상선수를 보게 돼 영광인데 사인까지 받아 기분이 아주 좋다”며 흥분해 했다.
볼트를 따라 대구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구로 가는 비행기 내에서도 볼트는 단연 인기였다. 그를 본 팬들은 환호했고 기념사진 촬영을 요구했지만 비행기 안에서는 받아주지 않았다. 대구에 도착한 볼트는 간단 인터뷰에서 “한국에 다시 오게 돼 기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대해줘 정말 감동적이다”는 소감을 밝혔다.
양종구 동아일보 기자 yjong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