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 파헤쳐 고려청자 도굴하려고…일제 ‘고려장’ 날조 “서프라이즈”

입력 2011-09-04 12:20:2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MBC ‘서프라이즈’는 4일 일제가 고려시대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조작한 ‘고려장’ 전설을 재조명했다.

늙고 쇠약한 부모를 산 속에 버린다는 고려장은 고려시대 어떤 문헌에서도 볼 수 없다.

‘고려사’와 ‘고려사 절요’에 따르면 대부분의 장례는 시신을 태운 후 그 유골을 사찰에 모셨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보물과 함께 매장하는 순장을 치렀다. ‘고려도경’에 따르면 일부 하위계층의 사람들은 시체를 산에 그대로 방치하는 풍장을 치렀다. 고려장은 그 단어조차 없다.

‘고려장’이라는 용어는 1882년 미국 선교사 그리피스가 쓴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서 처음 발견된다. 하지만 일본에만 머물던 그는 조선에 온 일이 없으며, 이 책은 온통 조선에 대한 왜곡과 편견으로만 가득 차 있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들은 내용을 토대로 책을 쓴 것이다.

역사 학자들은 “출처도 없고 조선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던 책에 등장하는 고려장 이야기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후 1919년 일본인이 쓰고 조선 총독부가 발간한 ‘조선 동화집’에 불효식자, 부모를 버린 사내라는 제목으로 고려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에 실린 ‘원곡 이야기’의 무대를 고려로 바꾼 것이다.

그렇자면 일본은 왜 이런 이야기를 지어 확산한 것일까.

인하대학교 최인학 교수는 “고려장은 우리나라의 무덤을 도굴하기 위한 일본의 꼼수”라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떨어뜨리고 열등감을 주기 위해 날조한 것.

고려장 악습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로 하여금 무덤을 파게 하는 효과적인 핑계가 됐다. 일본인들은 “부모를 산에 버린 고려인의 무덤”이라며 조선인 인부를 동원해 도굴하게 했다.

이후 일본은 고려시대 무덤을 활발하게 도굴하고 고려청자 등 부장품을 반출해 갔다.

또한 ‘언빌리버블 스토리’ 코너에서 1929년 한 살인사건을 소개했다. 확실한 물증 없이 부자 아버지의 살인범으로 몰려 교수형 당한 오천일 사건이다.

1929년 7월22일 새벽. 몰래 침입한 검은 복면의 남자에 의해 5만여 평의 토지를 소유한 대지주 오명보가 살해당한다. 평양경찰서 사법주임 고야마 경부는 살해당한 오명보의 원한 관계 보고서를 들척였지만, 쉽게 용의자를 지목할 수 없었다. 친인척 몇 명을 제외하곤 동네 주민 태반이 오명보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던 것.

소작료를 가혹하게 징수해 원성을 산 데다, 수십만원에 달하는 재산으로 고리대금을 일삼고, 네 명의 첩을 거느리는 것도 모자라 수시로 젊은 아낙네들을 농락해 물의를 일으켰다. 금품 관계, 치정 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있었다.

장례가 끝난 후 장남 오천일은 아버지 소유의 율리면 일대 5만여 평의 토지를 상속받았고, 얼마 전 자신이 아버지 명의로 일본생명보험회사에 들어둔 생명보험 2만원을 수령했다.

3년 후 뜻밖에도 오천일이 용의자로 지목됐고, 어떠한 물적 증거도 없어 재판이 진행됐다. 정신 병력이 있는 한 여자의 증언으로 붙들려 온 것. 경찰서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던 오천일은 범행을 자백했고, 1934년 유죄를 인정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 오천일이 자신에게 돌아올 할아버지의 재산을 멋대로 처분했다며, 고발하는 소송이 이어진 것. 그는 상속권을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를 고발한 것이었다.

한편 이날 ‘서프라이즈’는 핵폭탄의 아버지이나 수소폭탄 개발을 거부해 모든 것을 잃은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와 프랑스 대표 조각가 로뎅과 그의 뮤즈 까미유 끌로델의 사랑에 대해서도 담아냈다.

동아닷컴 온라인뉴스팀 기사제보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