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 끝 행복 시작!’…NC 다이노스 창단 멤버, 정성기의 인생스토리

입력 2011-09-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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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고비서 얻은 마지막 기회서른둘 이제 나의 첫 꿈을 던진다
“아, 이번에도 행운은 나의 편이 아니구나.” 불운했던 지난 10여년, 어렵게 잡은 마지막 기회도 그렇게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막막했다. 안정을 취하고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의료진에게 “정말 중요한 급한 일이 있다”고 말한뒤 병원을 떠나 야구장으로 달려갔다.

선수 공개선발, 트라이아웃을 통해 NC 다이노스의 창단 멤버가 된 정성기(32)의 그날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 만큼이나 험난했고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라마가 비극이었다면, 이번에는 한 가득 희망을 담은 행복한 예고편이었다.

○불운의 연속이었던 10년, 그리고 트라이아웃 전날 교통사고

지난 10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했지만 불운이 겹쳐 꿈을 이루지 못한 우완 사이드암 투수 정성기에게 NC의 트라이아웃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5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 위해 정성기는 4일 오후 순천에서 고속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빗길에 버스가 미끄러지며 전신주와 가로수를 들이받는 큰 사고가 났다. 승객 41명 중 21명이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다. 정성기는 사고 순간 “하필 오늘 사고가,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말 다행으로 아픈 곳이 없었다.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다시 마산구장으로 달려갔고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NC가 트라이아웃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 9일, 정성기의 이름도 합격자 명단에 있었다.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너무 기쁩니다. 지금까지 매번 눈앞에서 행운을 놓쳤어요.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구나 했는데, 오히려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랬나 봅니다.

가족과 주위 분들이 너무 좋아하십니다.” 웃음 뒤에 다부진 각오가 이어졌다. “다시 기회를 주신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야구를 뛰어넘어 야구를 잘 하겠습니다. 어떤 보직, 어떤 위치에서도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10년 전 첫 번째 도전과 좌절

2002년 애틀랜타와 계약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던 정성기는 2003년 싱글A에서 18세이브에 방어율 2.15를 기록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병역 의무를 마쳐야 했고 2004년부터 강원도 전방 부대에서 복무했다. 전역 후 정성기는 다시 한번 애틀랜타의 부름을 받고 태평양을 건넌다. 3년간의 공백, 그러나 2007년 싱글A와 더블A에서 22세이브 방어율 1.30으로 활약했다. 48이닝 동안 기록한 삼진이 무려 57개였다.

2008년 큰 희망을 품고 마운드에 올랐지만 크고 작은 부상과 함께 부진에 빠졌다. 우승을 앞둔 더블A팀 성적 때문에 약속됐던 트리플A 승격이 무산되는 아픔도 있었다. 결국 2009년 돌아왔지만 해외진출자 복귀 제한 규약에 묶여 2년 간 한국프로야구에 도전할 수 없었다.

○막내 팀 NC의 최고참

정성기는 1979년생이다. KIA 최희섭, LG 박용택 등 다른 팀 고참선수들이 동기다. 2013년 1군 진입을 앞두고 기존 구단에서 지원 선수를 지명하고, FA도 붙잡겠지만 그 때까지는 정성기가 최고참이다. 국내 프로야구 경험은 없지만 미국 무대를 두드리며 얻은 경험이 젊은 선수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지만 매번 무엇인가가 발목을 잡았어요. 시련이 있었더라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나이도 서른이 넘었네요. 마지막 기회, 젊고 패기 있는 동료들과 신나게 뛰겠습니다.” 막내구단 NC의 맏형, 정성기의 가슴은 2002년 처음 태평양을 건널 때보다 더 뜨거웠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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