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양복점 아저씨 찍기 위해 안 입는 양복 한벌 맞췄죠”

입력 2011-10-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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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페셔널의 사진 실력을 지닌 이병진은 ‘작가’로 불려도 과하지 않다.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그의 사진은 개그맨으로서 자아내는 웃음처럼 친근하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ecut

■ 포토에세이 ‘헌 책’ 출간 앞둔 이병진의 렌즈 스토리

좋은 장비는 필요없어요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세요



좋은 사진은
얼마나 움직이느냐와 비례하죠


요즘 사진을 취미로 즐기는 연예인들은 많다.

하지만 전문가에게 인정받는 연예인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개그맨 이병진(42)은 특별하다.그에게 ‘사진작가’라는 수식어는 결코 과하지 않다. 유명 사진작가 김중만은 이병진의 자유분방한 피사체와 사진에 대한 진지함을 높게 평가했다.

이미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병진은 또 다른 의미의 ‘스타’다. 이병진은 최근 소지섭, 비, 한효주와 같은 정상급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했던 한 전문 카메라 브랜드의 광고에 등장했다. “사진을 알게 되면서 점점 인생의 재미도 깊어진다”는 그를 만났다.


●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던 나, 카메라만 있으면…

원래 이병진은 혼자서 하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은 적도 없고,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신 적도 없다. 하지만 카메라를 만나고 나서 달라졌다.

“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카메라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더군요. 사진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게 됐고, 발이 닿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게 됐어요. 점심은 명동에서, 저녁은 강릉에서. 역시 사진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덕분에 제 매니저만 늘 노심초사죠.”(웃음)

사진 애호가이니 보유한 카메라 보디와 렌즈도 다양할 터. 그에게 몇 개의 장비를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예전에는 거의 렌즈 수집가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술을 안마시는 대신 돈이 생기면 장비 사는 데 몽땅 투자했어요. 세계에 몇 개 안되는 희귀 아이템도 가지고 있었고요. 외국 여행을 가면 렌즈 하나는 꼭 사게 되더라고요. 외국 사진작가가 저한테 직접 메일을 보내서 제 렌즈를 사 간 적도 있었죠.”

하지만 모두 과거의 이야기다.

이병진은 “결혼 직전에 많은 렌즈를 처분했어요. 지금은 정말 좋아하고 자주 이용하는 것 몇 개 말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나의 베스트 모델? 바로 아내, 그리고 곧 태어날 ‘똘희’

이병진은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설 때 특정한 ‘피사체’만 주목하지 않는다. 그냥 눈이 닿는 곳, 발길이 닿는 곳 모두 사진의 주인공들이다. 이병진에게는 딱 한명의 베스트 모델이 있다. 바로 아내 강지은 씨다.

“제 사진 중에 아내 사진이 제일 많아요. 한 여자만 10년을 넘게 찍었으니 나만큼 아내를 예쁘게 찍는 작가는 아마 없을 거예요. 그리고 반대로 나를 제일 짤 찍는 것도 아내예요. 서로를 그 만큼 잘 알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그의 새로운 베스트 모델이 등장한다. 바로 엄마의 뱃속에서 인생 7개월째를 맞은 똘희. 이병진은 “똘희가 태어나서 카메라 렌즈 속에 담길 생각을 하면 가슴 한 구석이 찡하다”고 말했다.


● 장비에 욕심을 버리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

이병진은 본업인 방송활동 외에 일반인 대상으로 하는 사진 강좌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그는 “좋은 사진을 찍고 싶으면 장비 욕심부터 버리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진에 입문하면 나도 모르게 장비병이 생겨요. 더 좋은 카메라, 렌즈, 액세서리를 사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사진은 욕심을 버릴수록 진실해지는 것 같아요. 장비에 투자하지 말고 오히려 그 돈을 여행에 투자했으면 좋겠어요. 좋은 사진은 얼마나 움직이느냐와 비례해요.”

이병진의 시선



● 그의 두 번째 사진집 ‘헌 책’

이병진은 2006년 포토 에세이 ‘찰나의 외면’을 발표했다. 그리고 5년 만인 11월 두 번째 에세이를 낼 예정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태블릿PC에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난 1년 반 동안 만난 사람들과 사라져가는 피사체, 살아가는 피사체를 담은 에세이가 될 것이다”고 소개했다. 두 번째 포토 에세이의 이름은 ‘헌 책’으로 정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시골 장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의 정겨운 웃음, 장인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양복점, 50년 된 이발소 등 이병진이 지나간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진 찍을 때 나름의 규칙이 있어요. 절대 초면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죠. 찍고 싶은 모델이 있으면 무조건 친해져야 해요. 친해진 후에 카메라에 담은 사진들은 표정이 남다르죠. 그게 제 고집이에요. 덕분에 양복점에서 평소 잘 입지 않는 양복 한 벌을 맞춰야 하기도 했지만요.”(웃음)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icky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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