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뮤지컬계 ‘쓰리 영주’를 아시나요

입력 2011-10-16 16:17:54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뮤지컬 배우 정영주(40)를 사석에서 처음 본 것은 밤이 이슥한 대학로의 술자리에서였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공연 관계자, 배우들과 가볍게 한 잔 걸치는 자리였는데, 우연히 여배우 두 명이 합석을 하게 된 것이었다.

두 명 중 한 명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 울린다.
호른 다섯 대가 동시에 ‘투티’를 울리는 듯한 목청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게다가 함께 술을 마시던, 30대 중반의 남자배우들이 ‘누나, 누나’하며 눈꼴 신(?) 애교까지 떨어대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호기심이 불꽃처럼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 ‘누님 카리스마’의 주인공은 정영주였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뮤지컬계 ‘카리스마 여배우 TOP3’를 꼽으라고 한다면 숨도 쉬지 않고 정영주, 김영주, 이영미를 들고 있다. 이렇게 얘기할 때 별로 반론이 없는 것을 보면, 대부분 수긍하고 있는 눈치이다.

어쨌든 ‘카리스마 마님’ 정영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조연배우 중 한 명이다. 여우조연상을 무려 세 번이나 받았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정영주가 생각하는 ‘좋은 조연배우란’란?

“‘내가 주연이다’하는 생각으로 하는 배우죠. ‘쟤는 주연이니까 따로 놀고, 나도 따로 놀고’. 이건 지는 패예요. 주연이 있으므로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돋보이는 거죠.”

정영주는 뮤지컬 ‘뱃보이’ 때의 경험을 예로 들었다. 당시 주연은 김수용이었다. 김수용도 천하가 알아주는 열심히 하는 배우. 정영주는 “김수용이 하는 ‘뱃보이’를 보면서 띵가띵가 놀 수 없었다”라고 했다. 연습실에서부터 불꽃이 튀었다.
정영주는 연습 도중 감정이 북받쳐 올라 몇 번이나 “커트”를 외쳐야 했다. 이런 경험은 그에게 두 개의 여우조연상을 안겨 준 ‘빌리엘리어트’ 때도 겪었다.


○… 잘 생긴 남자 따라갔다가 배우가 된 사연

정영주는 1994년 ‘명성황후’로 처음 뮤지컬 무대를 밟았다 … 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전에 ‘스타가 될 거야’라는 작품이 데뷔작이다. 앙상블이었고, 스물 셋의 나이였다.

스물 셋에 뮤지컬 제작사 에이콤이 운영하는 배우학교에 들어갔다. 2기생이었다. 그런데 들어가게 된 사연이 묘하다.

“길을 가다가 포스터를 붙이고 있는 남자가 너무 잘 생겼길래 무작정 쫓아갔죠. 그 사람이 배우 서영주였어요. 푸하하! 이 바닥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얘기예요. 갔더니 번호표를 줬는데, 그 사람이 1기 임상아였고요. 근데 가보니까 나같이 생긴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고요. 우하하하!!”

에이콤 배우학교에서 8개월 간 트레이닝을 받은 뒤, 정영주는 ‘스타가 될 거야’의 앙상블 배우로 뮤지컬에 입문했다.

정영주는 연극과가 아니라 극작과 출신이다. 여기에도 사연이 있다.
원래는 90학번 문창과였지만 때려치우고 4년가량 방황의 시기를 거쳤다. 배우 생활을 하다가 1998년에 다시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다.

“원래는 연극과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다 뜯어말리더라고요. 거기 들어가면 학생 공연이 많아 배우활동에 지장이 많다는 거였죠. 그래서 극작과에 들어갔는데, 거기도 공연을 하더라고요.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하고. 속았죠. 물론 그 작업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었지만.”
정영주-양형모. 스포츠동아DB

정영주-양형모. 스포츠동아DB



○… 성대파열, ‘내 인생은 끝났다’

정영주는 우리나라 뮤지컬 여배우 중 ‘최대 배기량’의 성량을 지녔다. 아버지, 어머니 중 누구를 닮았을까.

“할머니요. 생긴 건 아버지랑 똑같아요. 엄마 닮았으면 방송을 일찍 시작했을 걸요. 아담하고 여성스러운 외모시거든요. 남동생은 그래서 이뻐요. 저는 이 모양이고. 흐흐흐”

정영주는 ‘작품이 끊어지지 않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다른 배우들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데뷔 이래 지금까지 딱 두 번 쉬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 5개월, 성대가 파열돼 4개월 쉬었다.
지금 열 살이 된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9개월이 될 때까지 무대에 섰다. 아이를 출산하고 4개월, 해서 도합 5개월이다.

“‘메노포즈’를 할 때 공연 중에 성대가 나갔어요. 인생이 끝난 줄 알았죠. 이영자씨가 더블이었는데, 너무 죄송했어요.”

2008년, ‘메노포즈’ 공연 중 핏덩이를 뱉었다. 옥주현, 김호영, 김지훈, 조여정 등이 객석에 앉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순간적으로 목이 확 나가면서 피가 쏟아져 나왔어요. ‘야, 나 득음했다’하고 농담을 했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하루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자고나니 아예 소리가 안 나왔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가니 성대가 파열돼 끊어져 나갔다고 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끊어진 부위를 연결한다고 해서 성대가 바로 살아나는 게 아니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말도 안 되게 공연을 마무리했죠. 노래는 대사로 하고, 꼭 불려야 할 때는 다른 배우들이 나눠 불러줬어요.”

무조건 쉬어야 했다. 남편이 “위약금 물 게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해줄 테니 쉬어라”고 했다. 두 작품 정도가 계약되어 있었지만, 회사측에서도 사정을 아는지라 이해를 해주었다.

두문불출의 시간이 시작됐다. 집에 처박혀 마당조차 나가지 않았다. 폐인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비참했다.
아무 일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사니까 주변에서는 이상한 얘기들만 들려왔다.

하루는 멍하니 앉아 있는데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닿았다. 돌아보니 어린 아들 녀석이 행주에 물을 묻혀 와서는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세수 안 했어? 안 더워?”하면서.

“아들 녀석을 보는데 너무 불쌍한 거예요. 꾸질꾸질하고, 못 봐주겠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벌떡 일어섰다. 뮤지컬 ‘맘마미아’ 커버(일종의 대역) 제안이 들어왔다. 무조건 하러 나갔다.

정영주는 행운이었다고 했다. 폐인생활을 한 것이 오히려 성대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고, 복귀 후 출연한 ‘맘마미아’도 출연비중이 적어 워밍업에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후유증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목이 쉽게 피곤해진다. 예전에는 마음껏 내던 소리도 이제는 자제해야 한다.


○… 뮤지컬계 ‘쓰리 영주’를 아시나요

분위기를 바꿔보자. 우리나라 뮤지컬계에는 세 명의 ‘영주’가 있다. 정영주, 김영주, 서영주. 정영주, 김영주는 여자고 서영주는 남자배우이다.
정영주는 “세 명 중 가장 여성스러운 건 서영주”라며 웃었다.

“제작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한참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는 거예요. ‘네, 네’하면서 끝까지 받았죠. 마지막에 의상 피팅 얘기를 하는데 이상하더라고요. ‘저, 그거 제 사이즈 아닌데요?’하니까 ‘어? 김영주 배우 아니세요?’하는 거였죠. 이런 경우 꽤 많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늘 정영주가 피해(?)를 보는 것 같지만, 김영주 쪽으로도 정영주를 찾는 전화가 왕왕 걸려온다고 한다.
대박은 서영주 배우에게도 정영주를 찾는 전화가 간다는 사실.

정영주는 배우가 되기 전 의상공부를 했다. 여기까지는 제법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의상공부를 하기 전에는 에어로빅 강사를 했다. 정영주는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이라고 했다. 정말이다.

“에어로빅 강사들 아시죠? 다들 허스키예요. 하도 소리를 질러서. 그런데 당시 원장님이 저를 오해하신 일이 있었죠. 목이 멀쩡하니까 대충 하는 걸로 생각하신 거예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오셔서 제가 하는 걸 보시더라고요. 뭐 아시겠지만, 연습실이 쩌렁쩌렁 울렸죠. 다시는 그런 말씀 안 하시더군요.”

정영주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성대가 파열됐다가 재기하고 나서는 앙상블이든 뭐든 무조건 다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성대도 나갔다 돌아왔는데 못 할 게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었어요. 악착같이, 되는 대로 하고 살았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정영주는 7월 30일부터 10월 16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톡식히어로’의 악덕 여시장 역으로 무대에 섰다. 딱 하루 쉬고 18일부터 ‘넌센세이션’에 출연하고, 그 이후에는 ‘버자이너모놀로그’로 관객과 만난다.
왜냐고? ‘쉬지 않는 정영주’의 행진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