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이창용 “데뷔하고 딱 5주 놀아봤죠”

입력 2011-09-14 11: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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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참 길다. 뮤지컬 ‘넌 가끔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이하 넌가끔)’.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라면 한번쯤 읊어봤을 만한 원태연 작가의 은근 닭살스러운 시에 멜로디를 붙여 음악을 만든 일명 ‘포엠컬(시+뮤지컬))’이다.

이창용(27)은 ‘넌가끔’에서 남자 주인공 ‘철수’를 맡았다. 김승대, 조휘와 트리플 캐스팅이다. 김승대가 ‘내 마음의 풍금’에 출연 중인 데다 조휘는 조휘대로 ‘영웅’의 뉴욕 공연에 참여하는 바람에 초반 한 달은 이창용이 주인공을 ‘전세’냈다.

‘넌 가끔’ 공연이 있는 날. 이창용은 공연을 마치고 늦은 시각 대학로의 빈대떡집에 나타났다. 분장을 지웠지만, 여전히 어리버리 순진남 ‘철수’의 냄새가 배어 있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지만 ‘넌가끔’의 제작사인 파파프로덕션 관계자에 따르면 이창용은 ‘철수’역의 최다 추천 캐스팅이었다. 프로덕션 측에서 사전에 “철수역에 적당한 배우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온갖 군데에서 짜기라도 한 듯 ‘이창용’을 추천해온 것.

물론 이창용의 ‘출마기’는 따로 있다.
“대본을 보고 싶었어요. 궁금하니까. 봤는데 이게 진짜 유치하면서도 재밌더라고요. 물론 의문도 있었죠. 시가 아무리 좋아도 음악이 따라 주어야 하잖아요. 시를 음악으로 만드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뮤지컬 ‘빨래’의 민찬홍 작곡가가 맡았다는 말에 믿음이 갔죠.”

김승대와 조휘의 부재로 한 달 정도 ‘원캐(원캐스팅)’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창작작품과 초연작품을 다 경험해 봤지만, ‘창작초연작품’은 처음이다. 이창용은 “11번째 작품 만에 얻은 영광”이라고 했다.

“솔직히 전 덤으로 간 거죠. 워크숍(공연을 정식으로 무대에 올리기 전 예비 제작단계) 배우들이 사실상 완성해 놓은 작품이라. 저야말로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거죠(하하!)”


○… 오디션장에서 나는 교훈을 얻는다

2007년 ‘알타보이즈’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5년차. 10년은 해야 신인 딱지를 떼는 뮤지컬계로 보면 여전히 그는 싱싱한 신인이다.

“학교(서울예대)는 제가 생각해도 열심히 다녔어요. 부모님 철학이 ‘공부는 못 해도 수업은 빠지지 말아라’셨거든요.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대학생들 취업 걱정하듯 우리도 마찬가지죠. 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죠.”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입대를 했다. 부대에서 친한 선배인 조정석에게 전화를 했다. 조정석은 이미 뮤지컬 무대에서 인정을 받는 스타 배우였다.

“형이 걱정말라고 하더라고요. 자신은 졸업 전에 데뷔해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 한 게 늘 아쉽다고요. 저보고 군대 다녀와서 제 때 데뷔해도 된다고 격려해 줬죠.”

제대 후 뮤지컬 ‘알타보이즈’의 오디션을 봤다. 연기, 춤 다 안 되는데 그나마 노래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알타보이즈’는 노래만 전형에 들어 있었다. 편한 마음으로 가서 봤는데, 덜컥 붙었다.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기말고사 볼 때쯤 연습에 들어가 12월 15일, 저녁 7시 공연으로 데뷔했죠(이창용은 데뷔일자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서 비공개 스토리. 사실 이창용은 ‘알타보이즈’ 이전에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 그 유명한 ‘레 미제라블’이었다. 졸업할 때까지는 아무리 유혹이 있어도 오디션을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였지만,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한 자리 껴보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선배, 동기들하고 같이 오디션을 봤는데 1차가 된 거예요. 깜짝 놀랐죠. 앙상블 2차 오디션을 보라는 연락이 와서 갔죠.”

오디션도 경험이자 관록이다. 우리의 생초짜 뮤지컬 지망생은 목 관리도 제대로 안 하고 오디션장에 들어갔다. 그것도 첫 타임이었다. 이창용은 “목도 안 풀린 상태에서 완전 죽 쑤고 떨어졌다”라며 뒷머리를 긁었다.

“오디션은 떨어질 때마다 엄청난 교훈을 주는 것 같아요. 많이 떨어져 봐야 오디션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죠. 선배님들도 하시는 말씀이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어요. 준비가 제대로 되면 자신있게 할 수 있죠. 떨리지도 않아요.”



○… 늘 2인자였던 어린 시절

이창용의 어릴 적 꿈은 뮤지컬배우가 아니라 가수였다. TV 가요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였다. 이창용은 ‘서태지와 아이들’, ‘H.O.T’, ‘Ref’, ‘젝스키스’, ‘김건모’, ‘신승훈’ 등 자신의 어린 시절 우상들을 줄줄 읊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학교 축제의 단골 스타였다.

그런 그에게도 비애가 있었으니 ….
“항상 2인자였어요. 뭐 공부도 2인자였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옆반에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 하는 녀석이 있더라’고 하더라고요. ‘쳇, 잘 해야 얼마나 잘 하겠어’ 싶었죠. 이래봬도 전 연영과 지망생이니까요.”

수업 중 화장실이 급해 복도를 걸어가는데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이 학생에게 노래를 시킨 모양이었다. 딱 듣는 순간 몸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기가 죽었죠. 너무 잘 해서. 멋진 친구였는데 노래까지 잘 하니, 자존심이 팍 상할 수밖에요.”

지역구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가요제같은 데 나가면 예선은 쉽게 통과했지만 결선에서 7등을 하는 식이었다. 세상은 넓고 가수는 많았다.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난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착각을 하고 산 거죠. 대학에 들어가서도 연기자는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 해야 노래도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아니, 지금도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이창용은 다른 배우들의 부러움을 사는 배우 중의 한 명이다. 이유는 참으로 현실적이다. 이창용은 데뷔 이래 ‘쉰 적’이 없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데뷔 첫 해에 네 작품, 이듬해도 네 작품 … 대략 1년에 3~4 작품은 했던 것 같아요. 뭐 운이죠.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창용이 ‘오디션이 가장 쉬웠어요’하는 복 받은 배우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도 숱하게 오디션을 봤고, 숱하게 떨어져 봤다.
처음에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내가 왜 떨어졌지’하고 불만이 올라왔다. 자기 대신 캐스팅된 배우를 보며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착각이었다.

“2009년 ‘어쌔신’이란 작품을 하고 딱 5주를 놀았어요. 근데 쉬고 있으니 미치겠더라고요. 경조사가 있어 가면 선배들이 ‘너 요즘 뭐 하니’하고 묻는데 ‘잠깐 쉬고 있습니다’ 소리가 죽도록 하기 싫더라고요. ‘다음 작품 때문에 쉬고 있습니다’했지만 거짓말이죠. 다음 작품은 없었으니까요.”

이창용에게 하나의 계기가 된 작품은 뮤지컬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이다. 2인극으로 친구 사이인 두 남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창용은 워크숍 배우로 참여했다. 워크숍 배우를 했다고 해서 본 공연 배우로 캐스팅된다는 법은 없다.

“대본과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요. 하다보니 워크숍만 하게 되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요. ‘혹시 본 공연에서도 써주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정말 하게 됐죠.”

이창용은 ‘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를 “목숨을 걸고 한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은 이후 영화로도 제작돼 개봉됐다. 이창용은 영화에도 캐스팅됐다.

이창용은 일찌감치 자신의 인생 설계도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순탄하게 빈 칸을 채워가고 있다. 지금은 배워 나가는 단계다. ‘제대로 하는 것’은 삼십대 이후로 잡아 놓았다.

“(이)석준 형에게 ‘연기를 잘 하는 법’을 물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형이 ‘너 몇 살이야? 스물 일곱? 뭘 그런 걸 고민해. 형도 서른 넘어서 연기가 뭔지 조금 알겠더라’하더라고요.”

비슷한 경험은 2008년 ‘쓰릴미’ 때에도 있었다. 남자 두 명, 피아노 한 대만 덩그러니 등장하는 이 기이한 작품에서 이창용은 요즘 500만 관객을 넘긴 화제의 영화 ‘최종병기 활’과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무열과 페어였다.

“‘쓰릴미’ 연출님이 제게 나이를 물으시더라고요. 대답을 하니까 ‘너 왜 연기를 테크닉적으로 하려고 그래. 넌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야. 그냥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만 생각해. 그렇게만 해’라고 하시더라고요.”

스물일곱의 이창용은 당연히 걸어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창창한 배우다. 말은 ‘서른부터’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서른도 이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월이 더 흘러 실력이 쌓이면, 그때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창성할 창, 날랠 용’. 할아버지가 작명소에서 지어 왔다는 이름 창. 용.
창공을 날으는 황금빛 용의 모습을 볼 날이 머지않았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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