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터뷰 때 동아 뉴스스테이션의 영상취재를 동시 진행했었는데, 기자조차 깜빡한 사실을 그녀는 잊지 않고 있었다. 기자가 각별히 인상적인 존재였을 리는 없고, 심은진의 기억력이 탁월하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심은진은 자신의 두 번째 뮤지컬 작품인 ‘온에어 초콜릿’에서 여주인공 ‘김순정PD’ 역을 맡고 있다. ‘위대한 캣츠비’ 때의 ‘선’이 4차원의 순정무구 스타일이었다면, ‘김순정’은 까칠하면서도 도도한 노처녀 역이다.
베이비복스 시절 시크한 중성적 매력을 발산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김순정’ 쪽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심은진에 좀 더 가깝게 느껴진다.
우선 작품 이야기.
기자는 ‘온에어 초콜릿’을 두 번 관람했다. 한 번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았고, 두 번째는 심은진에 대한 ‘팬심’으로 보았다. 기자는 베이비복스의 꽤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두 차례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객석은 만석이었다.
- ‘위대한 캣츠비’ 이후 이처럼 곧바로 뮤지컬 무대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슨 바람이 분걸까요?
“저도 다시는 뮤지컬을 안 하게 될 줄 알았어요. 솔직히 얘기하자면, 낚인 거죠(하하!).”
‘위대한 캣츠비’를 하면서 마음고생이 있었다. 뮤지컬 무대 뒤에는 관객이 모르는 일들이 많다. ‘위대한 캣츠비’도 내부적인 진통이 심한 작품이었다.
“사람이 먹던 밥 먹어야지, 안 먹던 밥 먹으려니 체하는구나 싶었죠. ‘위대한 캣츠비’ 연장 공연까지 끝내고 쫑파티에서 ‘앞으로 뮤지컬은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다음날 ‘위대한 캣츠비’에서 함께 공연했던 최대철 배우한테 전화가 온 거죠.”
완강하게 고사했지만 이후 연출자, 배우들의 ‘심은진 모시기’ 파상공세는 계속됐다. 결국 2주간의 고민 끝에 “해보지 뭐”하고 결심했다.
- ‘한 번’과 ‘두 번’은 다르죠. ‘위대한 캣츠비’ 때는 사람들이 ‘아, 뮤지컬을 한 번 해 보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심은진이란 배우가 뮤지컬을 계속 하는구나’하고 여길 것 같은데요.
“체력만 허락된다면 계속 할 것 같아요. 사실 돈보고 하는 거면 못 하죠. 이번에 ‘온에어 초콜렛’을 하면서 소극장의 실태를 제대로 알게 됐어요.”
심은진은 자신을 예로 들었다.
“제가 ‘온에어 초콜릿’에서 최고 페이를 받는다고 해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봐야죠. 그런데 정말 너무 너무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미안해서 말도 못 해요. 아마 한 회당 제가 받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을 걸요? 아이들 밥 사 먹이고, 술 사 먹이고. 그래도 재밌어요.”
심은진은 “처음부터 무대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뭐니 뭐니 해도 무대가 재미있다”라고 했다. ‘위대한 캣츠비’ 때도 이래저래 힘든 일이 많았지만, 무대에 서면 재미있었단다.
- 재미도 좋지만 ‘걸어 다니는 병동’으로 불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이번 공연을 앞두고 연습 때도 몸이 상당히 안 좋았다고 하던데요.
“제가 어려서는 굉장히 건강했거든요. 직업병으로 봐야죠 뭐. 15년 동안 거의 힐만 신고 춤을 춰야 했으니. 병원에서 제 골반 자체가 힐에 맞춰져서 좀 올라갔다고 하더라고요. 꼬리뼈 있는 데가 살짝 올라가 있대요. 오리궁둥이 마냥. 청바지 모델하기는 좋겠죠.”
‘초콜릿 온에어’ 공연을 앞두고 심은진은 디스크로 고생했다. 다른 배우들이 연습할 때 병원에 입원한 심은진은 혼자 악보와 대본을 봐야 했다.
“디스크가 갑자기 생긴 건 아니고요, 계속 쌓여 온 거죠. 춤을 추고 운동을 많이 하다보니 근육으로 버텼는데, 최근 드라마 등 연기에 주력하면서 운동을 쉬다 보니까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베이비복스는 무대에서 힐을 신고 춤을 춘 최초의 걸그룹이다. 핑클, SES와 함께 요정 이미지로 출발했지만, 2집 이후 섹시그룹으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무대에 올라갈 때만 힐을 신었지만, 소속사에서 아예 연습도 힐을 신고 하라고 했단다. 나중에는 운동화보다 힐을 신고 춤을 추는 게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은진은 “베이비복스 멤버들 대부분 디스크 증상이 있다”고 했다. 간미연도 디스크로 고생하고 있고, 윤은혜는 인대에 이상이 있다.
심은진은 함께 공연하는 배우들과 소탈하게 잘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대학로 배우들의 단골술집에서 배우들과 어울리는 심은진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이 꽤 된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심은진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술이 센 여자 연예인으로 꼽혔다. 지금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신지 소주 7병, 심은진 9병’이란 기사가 제법 뜬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 얘기가 큰 화제가 됐다.
“지금은 술이 많이 줄었죠. 그래도 센 편일 걸요? 소주 두 병이나 두병 반 정도 마시면 살짝 취해서 알딸딸한 정도. 청하는 네 병 정도.”
- 전작 ‘위대한 캣츠비’도 그렇지만 ‘온에어 초콜릿’도 소극장 작품이지요. 대극장이 아닌 소극장 작품을 특별히 선호하는 것인가요.
“소극장이 재미있어요. ‘캣츠비’ 연장 공연 때 중극장에서 해봤는데 생동감이 없더라고요. 콘서트라면 아무리 큰 무대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든 -무대에서 뛰어내려서라도- 관객이 저한테 호응하게 만들겠는데, 이건 극이잖아요.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죠.”
표정 하나, 손짓 하나 관객에게 모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소극장의 매력이란다. 디테일한 부분이 잘 살아 연기 공부하기에도 좋다.
“대극장에서만 연기하다가 드라마 가면 손해를 많이 봐요. 욕 많이 먹는 연기를 하게 되죠.”
심은진은 ‘캣츠비’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후반에 들어가면 ‘선’이 울면서 애타게 노래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중극장이다보니 힘들게 울면서 노래를 하는 모습이 관객에게 보이지 않았다.
“속으로 ‘이럴 거면 뭐 하러 힘들게 울면서 노래를 부르나. 우는 척만 하고 노래에 더 신경을 쓰자’싶었죠. 그런데 결국 ‘그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게 도움이 안 되잖아요.”
- ‘캣츠비’의 ‘선’은 애교가 넘치고 귀여운 캐릭터입니다. ‘온에어’의 ‘김순정’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구석이 있죠. 베이비복스 팬들로서는 ‘여전사’ 심은진의 변신에 당혹감을 넘어 배신감까지 느낄 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하하핫! 제게는 두 가지 성격이 다 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술 먹었을 때와 안 먹었을 때. ‘선’은 제가 술을 먹었을 때, ‘김순정’은 안 먹었을 때죠.”
‘선’을 할 때, 기존의 강한 이미지를 깨는 데 꽤 힘이 들었다. 사람들은 심은진을 세게만 보지만, 사실은 ‘선’의 부드러운 성격도 그녀의 일부이다.
가까운 지인들은 ‘선’을 보고 “딱 심은진 너다”라고 했단다. 물론 ‘술 석 잔 마시고 무대에 올라간 심은진’이란 단서가 붙었지만.
- ‘온에어 초콜릿’은 ‘위대한 캣츠비’와 달리 춤이 많더군요. 무대에서 보니 옛 실력이 전혀 녹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한 동안 춤과 떨어져 있었는데, 연습을 많이 했나요.
“사실 ‘온에어’의 안무는 관객 눈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안무라기보다는 율동에 가까운 거예요. 베이베복스 때 하도 어려운 춤을 많이 춰서. 가수들 춤은 이렇지 않잖아요. 손 하나 뻗고 4/4박자 가는 일은 거의 없죠.”
춤 연습은 평소에도 틈틈이 하고 있었다고 했다. 쉬다 보니 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작년에는 아예 친한 댄서 오빠를 독선생으로 모시고 6개월가량 강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최근 심은진은 자신의 트위터에 봉사활동 모습을 담은 사진을 올려 인터넷 검색어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물으니 “유기견 센터 견사를 짓는 일”이라고 했다.
“(이)효리 언니가 봉사활동을 다니는 유기견 센터가 있어요. 미용실에 갔더니 효리 언니랑 (김)규리 언니가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도 합류해서 저랑 효리 언니, (김)제동 오빠가 함께 갔죠.”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평강공주 보호소’란 곳이다. 사설 시설이라 안락사가 없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키운다. 아프면 수술도 해준다. 당연히 비용도, 손길도 부족하다.
인터뷰 이후에도 심은진은 수차례 더 보호소를 찾아 벽돌을 나르고, 못질을 하는 봉사활동을 했다.
“꽤 열심이다”라고 했더니 “계속 해야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심은진은 올 하반기에 꽤 바쁜 스케줄을 앞두고 있다. 10월 3일 ‘온에어 초콜릿’ 정규공연이 끝나면 곧바로 연장공연에 들어간다. 다만 영화, 드라마 일정이 겹쳐 연장공연에서는 출연회수를 부득이하게 줄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사업체(심은진은 공동 CEO를 맡고 있다)도 확장한다.
시계를 보니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더니 “분장을 미리 해서 괜찮다. 오히려 인터뷰를 하면서 목을 풀고 있다”라고 했다.
많은 배우들과 인터뷰를 해봤지만, 이 말은 절반쯤 거짓말이다. 배우들은 공연 전 꽤 예민해지기에 어지간하면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조바심을 내는 기자를 위한 심은진의 배려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 보너스! ‘온에어 초콜릿’의 예비 관객을 위해 한 마디 남겨 주시라.
“심각하고, 인생 공부가 될 만한 작품도 좋지만, ‘온에어 초콜릿’같은 유쾌한 작품도 좋잖아요. 커플, 가족 … 누구나 와서 웃을 수 있는 작품. 아무 생각없게 만들어주는 작품. 제가 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요즘 힘들어’하면 함께 술이라도 마시다가 ‘우리 뮤지컬 보러 가자’하고 함께 공연장을 찾을 만한 작품이에요. 마음을 활짝 열고 찾아 주세요.”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