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능청맞은 ‘여우’ 조로 vs 야성적인 ‘퓨마’ 조로

입력 2011-11-15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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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조로’ ★★★★
조승우, 디에고 모습이 조로보다 더 섹시해 아쉬움
김준현, 악당들보다 키가 커 격투때 쾌감 강도 약해

영국 웨스트엔드 흥행작인 뮤지컬 ‘조로’는 배우에 따라 작품의 느낌이 다르다. 조승우(왼쪽)는 코믹한 모습을 잘 살린 인간적인 조로를 보여준 반면 김준현은 남성미가 강하고 액션의 선이 호쾌해 여우(스페인어 조로의 원뜻)보다 퓨마에 가까운 조로를 보여줬다. 쇼팩 제공

서울 한남동의 새 공연장 블루스퀘어의 개관작 ‘조로’는 스페인풍의 신나는 음악, 복면 영웅의 활극, 로맨스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는 점에서 뮤지컬 장르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돌아온 탕자가 악의 무리를 물리치고 사랑도 얻는다’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개성이 뚜렷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주요 배역을 살펴보면 어느 하나 쉬워 보이는 것이 없다.

주인공 조로는 천진난만하며 자유로운 집시(디에고)와 어릴 적 친구인 라몬을 응징하는 용의주도한 영웅(조로)의 양 극단을 오가는 캐릭터다. 라몬은 단순한 폭군이 아니라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를 품고 있어 관객의 동정심도 끌어내야 하는 인물이다. 디에고를 따르는 집시 무리의 ‘왕 언니’ 이네즈는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집시 특유의 마력을 가진 인물로, 조로와 라몬의 사랑을 받는 숙녀 루이스와 대조를 이룬다. 라몬의 오른팔 가르시아는 순박하고 우유부단하지만 이네즈를 사랑하게 되면서 결국 위기에 처한 조로를 구한다.

이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톱니바퀴처럼 짜임새 있게 물려 돌아가느냐가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하다. 어떤 캐스팅이냐에 따라 객석에서 체감하는 온도가 확연히 달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조승우의 조로는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뒷받침되면서 ‘지킬 앤 하이드’ 때와는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배우로서 아담한 그의 키(173cm)는 스페인어로 여우를 뜻하는 조로의 이미지에도 잘 맞았다.

반면 조로 역의 세 배우 중 한 명인 김준현의 조로는 그런 흡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183cm의 큰 키가 약점으로 작용했다. ‘여우’ 조로의 이미지와 충돌하는 데다 상대적으로 악당들이 작고 약해 보여 관객이 격투 장면을 통해 느끼는 쾌감의 강도가 약했다.

연기의 완급 조절을 통해 관객과 호흡하는 면에서도 조승우는 뛰어났다. 조승우의 조로가 객석에서 큰 웃음을 이끌어낸 두 장면에서 김준현의 조로는 별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다. 복면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 디에고가 붉은 망토를 찾다가 이네즈에게서 갖다 버렸다는 얘기를 듣고 낙담하는 장면, 그리고 루이스를 총살 직전 여러 명의 조로를 동원해 구출한 뒤 ‘왜 늦었냐’는 추궁을 받고 “조로 의상 일곱 벌을 구하기가 쉬운 줄 아느냐”고 말하는 장면이다.

조승우의 조로에게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복면 영웅의 판타지는 복면을 썼을 때와 벗었을 때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가죽재킷 차림의 ‘집시 킹’ 디에고의 모습이 조로보다 더 섹시했다.

조로만큼 중요한 인물인 이네즈의 경우 이영미의 이네즈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발군이지만 표정과 움직임이 과장된 느낌을 줬고 김선영의 이네즈는 연기가 자연스러웠지만 정열적인 면모는 부족해 보였다.

작품 전체의 균형도 튜닝이 필요했다. 가령 라몬의 폭정에 항거해 비장미 넘치는 춤을 추거나 절규하는 느낌의 노래를 부르기 전 분위기를 너무 가볍게 가져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점점 가까워질 완성도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작품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i: 내년 1월 15일까지. 3만∼13만 원. 02-548-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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