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사랑하기를 참 잘했다 야구를, 그리고 나의 팀을…

입력 2011-12-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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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있어 절대적인 진리 중 하나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손해’라는 것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덜 사랑하는 자에게 늘 패한다는 슬프고도 비정한 사랑의 속성은 야구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안타깝게도 팬은 항상 약자다. 아무리 야구가 팬을 위해 존재한다지만, 누가 뭐래도 팬이 팀을 사랑하는 만큼 팬을 사랑하는 팀, 또는 선수는 없다.

생각해보니 나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끊임없이 손해보고 상처받으며 야구를 사랑했다. 다정하지도 않고, 행복한 순간보다 서러운 마음을 줄 때가 훨씬 많았으며,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배신감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야구를 떠날 생각을 못하고 한결같이 사랑해왔으니 말이다. 때로 말도 안 되는 패배 앞에 “내가 다시 야구를 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결심하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헤벌쭉 웃으며 야구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심지어 아무리 못난 내 팀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비웃거나 욕하면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미는 건 무슨 이상한 심리란 말인가.

그뿐인가. 시즌이 끝나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을 때에도 끊임없이 정보의 바다에서 그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사랑도 이 정도 되면 독하다 못해 집착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팬심’이란 참 이상한 형태의 사랑이다. 사랑과 미움이 이토록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손해 보는 사랑을 오랫동안 해온 건 온전히 야구만이 줄 수 있는 뿌듯한 기쁨과 만족 때문이다. 야구는 내 학창시절 무한한 자부심과 긍지를 주었고, 갈 곳 몰라 방황할 때 딱 나만큼 평범하고 잘난 구석 없던 응원팀의 우승은 삶의 길잡이가 돼주었다.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선수들을 보며 그들이 내게 준 추억과 위안을 가늠해보는 기쁨을, 내가 야구팬이 아니었다면 그 어디에서 누렸을 것인가. 고단하고 지칠 때마다 한번씩 생각하며 빙긋이 미소를 머금게 되는 사랑하는 선수들과 승리의 순간. 내 삶의 위기라고 생각될 때 문득 떠올리게 되는 마무리 투수의 웃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커다란 선물이다.

오랜 세월 야구를 사랑하며 때로 마음 다치고 가슴 아픈 순간도 숱하게 많았지만,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위안과 생활의 활력을 얻었다. 그래서 난, 비록 나만큼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을지라도, 야구가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기를 참 잘했다. 야구를, 그리고 나의 팀을….

여성열혈야구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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