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1월 3일, 한국 e스포츠협회(KeSPA)는 홈페이지를 통해 ‘테란의 황제’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의 은퇴를 공지했다. 그리고 이 날부터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는 ‘아마추어’가 되었고, 3년간 KeSPA가 주최하는 e스포츠 리그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은퇴 소식이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이전에 발표한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전향 소식이 더 뇌리에 남았기 때문 이랄까. 스타2 전향 이후 시작된 GSL(Global StarCraft II League)과 GSL 팀 리그 등에서 선수로 다시 등장한 그의 모습은 올드 팬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남기기도 했다.
이처럼 그에게 안목이 집중된 이유는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국내 e스포츠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스타2에서 그가 거두는 성적에 따라 전체 흥행 여부가 좌우된다고 했을 정도. 이러한 주변의 관심과 기대가 부담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그는 있어야 할 때와 장소에서 항상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어느덧 그가 스타2로 전향을 선언한지도 1년이 넘게 지났다. 이에 그를 직접 만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과거, 프로게이머로 걸어온 길 - “앞만 보고 달렸다”
그가 운영하고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스타2 슬레이어즈 팀의 새로운 숙소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슬레이어즈 팀은 서울 인근의 김포시로 숙소를 이전했다. 사람으로 가득한 번화가보다 한가한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는 그를 따라 인근의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의 과거는 어땠나. 크고 작을 수는 있겠지만, 한 분야의 정점에 섰던 경험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프로게이머 임요환에 대해서 궁금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일을 마음에 담아 놓는 스타일이 아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다만 다른 사람들과는 약간 다르게 앞을 바라보는데, 가장 최악의 경우를 먼저 예상했다. ‘이보다 나쁜 일은 없을 거야’라고 예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건 대처하는데 마음가짐이 편했다. 예를 들어 ‘스타 리그 16강 전에서 탈락해도 예선 탈락하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까지 큰 말썽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기분 좋지 않은 일로 싸웠던 사람도 다음날 지나면 잊곤 했다.
그리고 그 때는 앞뒤 따지지 않는 열정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며칠 밤을 새면서 새로운 전략을 세우고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둘째치고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힘든 줄을 몰랐다. 말 그대로 ‘재미’가 있었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이제는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힘들다(웃음).
당시에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가 없었다. 초창기 본 기자도 몸을 담았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임요환 선수의 말처럼 그 열정 하나로 임했다고 생각한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걸어왔고, 아직도 걷고 있는 지금 임요환 선수만의 다짐 같은 것이 있다면.
마찬가지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생기고, 인터넷을 거쳐 점차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프로다운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 애썼다. 프로라는 뜻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지면 뺏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나라도 상대방의 것을 더 뺏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프로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겨야 재미가 있는 법이다(웃음).
현재, 스타2로 전향 - “이제는 생각할 것이 너무 많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임요환이 있었다면, 지금의 임요환은 어떤가. 스타2로 전향한 이후 이제는 프로게이머 임요환 선수가 아닌 다른 모습을 자주 보는 것 같다.
선수로서의 욕심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금도 나를 응원하는 팬을 위해 선수로서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 돌이켜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프로게이머로 정상에도 올라 보았고, 이로 인해 TV CF, 영화 등을 찍기도 하고…, 참 많은 것을 한번씩은 경험해 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졌다. 20대 시절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책임질 일이 많아졌다. 슬레이어스 팀의 운영을 비롯해 가장으로서의 역할, 사업가로서의 역할 등 준비할 것이 많아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게임 하나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타2로 전향한 이후 좋지 못했던 성적도 상관이 있는 부분인가.
그것이… 참 아쉽다. 지금도 선수로서 예전의 영광, 정상에 있던 모습을 그리며 노력하고 있는데, 여러 문제가 생길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한 때는 모든 걸 그만 둘 생각(은퇴)도 고려해 봤다. 하지만, 슬레이어스 팀의 후배들을 키우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주변 프로게이머 후배들의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 동안 상대방으로부터 많은 승리를 거두어 왔지만, 최근에는 많이 뺏겼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금 잘하고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 미운 감정은 없다. 승리를 즐길 줄 아는 것도 프로지만, 패배도 즐길 줄 아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상대 후배, 선수도 승리할 자격이 있는 법이다. 승리와 패배 그 두 가지에서 많은 것이 달라지는 법이다. 이제는 지금 자체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스타2 전향 이후, 과거 프로게이머 시절처럼 팀에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개인 스폰서를 많이 받고 있다. 최근 인텔로부터 메인 스폰서를 받기도 했는데.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 중의 하나였다. 인텔로부터 메인 스폰서를 받으면서 과거와는 달리 PC의 성능을 좌우하는 데 프로세서(CPU)에 대한 중요성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PC 게임과 PC 성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과거 주변에 ‘임요환은 컴맹’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웃음).
특히, 얼마 전 인텔로부터 울트라북이라는 노트북을 받아 사용해봤다. 노트북의 가장 중요한 점은 크기와 무게라고 생각한다. 작고, 얇은 울트라북은 기존 노트북과 다르게 들고 다니기 편해서 편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팅 속도가 정말 빠르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데스크탑PC는 전원을 누르고 윈도 바탕화면이 켜지는데 1분은 넘게 걸리지만, 이 울트라북은 10초 정도면 끝나더라. 처음에 노트북 크기와 무게에 놀라고, 부팅 속도에 놀란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내장 그래픽 성능에 대한 부분도 만족스러웠다. 이전에는 스타2와 고사양 게임을 하려면 당연히 외장 그래픽 카드(칩셋)이 있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울트라북은 내장 그래픽으로도 어느 정도 실행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물론, 그래픽 옵션을 낮추고 실행해야 했지만, 이전에는 이조차도 불가능했지 않았나. ‘와우’나 ‘아바’ 같은 게임은 데스크탑PC에서 하는 것처럼 아무 문제 없이 실행 되더라.
그는 이렇게 말하며 직접 들고 온 울트라북으로 성능을 시연해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연인 가연씨가 비밀번호를 걸어 윈도 부팅에도 할 수 없게 되자, “그 짧은 시간에 비밀 번호를 걸어놨네”라며 멋쩍은 미소만을 지었다(웃음).
미래, 스타2 흥행은? ? “모두가 노력했으면 좋겠다”
스타2가 e스포츠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보다 그 영향이 적은 것 같다. e스포츠 산업에 오래 몸을 담고 있는 당사자로서 느끼는 바가 많을 것 같은데.
스타2에 대한 부분은 선수의 입장보다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할 말이 참 많다. 게이머는 게이머대로, 방송사는 방송사대로, 협회는 협회대로, 게임사는 게임사대로… 그렇게 모두가 노력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e스포츠는 야구나 축구처럼 이제 프로 스포츠다. 즉, 모두가 즐기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라는 뜻이다. 즐기는 사람도 많아야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스타1이 흥행에 성공하고, e스포츠 산업으로 발전한 이유는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게임을 해봤다고 해서 마련된 것이 아니다. 게임 전문 방송국에 이어 전용 경기장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중계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지금의 e스포츠 산업이 되었다. 스타1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경기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스타2는 어떤가. 여러 단체, 집단의 이해 관계로 인해 지금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지금 스타2 게이머들의 마음가짐은 어떤가. 과거보다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게이머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게이머들이 게임에 열중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아직 아쉽다. 스타1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중계 시스템 이외에도 게이머를 위한 제도 및 정책 등이 보완되어 온 점이 많았다. 군대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스타1은 공군 게임단이 생겨나면서 프로게이머들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스타2는 어떤가. 아직도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신경 쓸 문제가 많아질수록 게이머는 집중할 수가 없는 법이다. 물론, e스포츠 외에도 모든 프로 스포츠가 안고 있는 문제지만 어느 정도 해결책은 다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주었으면 좋겠다.
게이머들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자신을 아껴주고 응원하는 팬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실력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직 나이가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인성교육 등도 병행하고 있다.
한 사람의 임요환을 보다
임요환 선수와 초창기 프로게이머 시절의 얘기를 나눌 때는 본 기자도 동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치 친구와 얘기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20대 초반 단지 게임이 좋아서 3일 밤낮을 PC방에서 밤을 새던 그 때의 추억과 방송 중계도 없던 KIGL, PKO의 얘기는 올드 게이머들에겐 재미있는 추억거리 중 하나다. 편견 때문에 단순 문제아로도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정식으로 프로게이머 직업을 탄생케 했던 것도 올드 게이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자주 “아직까지 나를 응원하고, 이전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그들을 위해 이벤트도 열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비록 앞으로 더 이상 ‘테란의 황제, 임요환’의 모습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한 사람의 임요환은 지금도 노력 중이다.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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