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승준 “삼성 떠나는 지금이 가장 괴롭다”

입력 2012-04-16 23: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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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준과 삼성 썬더스의 계약기간은 5월말 만료된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동아닷컴]

○예정된 이별, 정든 팀 떠나려니 슬퍼
○팀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뛸 것
○하승진에게 덩크,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예정된 이별이지만 정말 힘듭니다. 한국에 오고 나서 지금이 가장 괴로운 순간입니다."

이승준(34·서울삼성)의 눈은 붉게 물들었다. 이승준은 ‘한국에 온 이래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라는 질문에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 204cm의 거구, 항상 밝고 쾌활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이승준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지난 13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삼성 트레이닝 센터(STC)에서 이승준을 만났다. 이승준은 정규 시즌이 끝난 뒤 동생 이동준(32·고양오리온스)과 호주와 뉴질랜드로 3주간 여행을 다녀왔다. 둘 다 소속팀의 지난 시즌 성적이 좋지 못해 농구 생각 없이 푹 쉬었단다. 이승준은 “운동을 안 해 뱃살이 붙고 복근이 없어졌다”며 상의를 벗고 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손을 내저었다.

이승준은 78년생, 올해 나이로 서른 넷이지만 현재 ‘솔로’다. 여성팬들에겐 희소식이다. 하지만 경쟁자(?)가 만만치 않다. 이승준은 “이제 가족을 가질 나이다. 좋은 여자가 나타나면 당연히 결혼할 것”이라면서도 “이상형은 신세경이나 신민아”라고 꼬집어 말했다.

지난 시즌 삼성의 '쇼타임 농구'를 이끈 34살의 꽃미남 이승준은 현재 솔로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지난 시즌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결과를 내지 못해 기분이 편치 않았습니다. 사임하신 전 감독님께도 죄송할 뿐입니다.”

이승준은 “젊은 선수들이 많아 팀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라면서 “김승현과 시즌 초반부터 함께 뛰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승준과 삼성 썬더스의 계약은 오는 5월말까지다. 한국프로농구연맹(KBL) 규정상 혼혈 선수들은 한 팀에서 3년을 뛴 뒤에는 반드시 다른 팀으로 이적하도록 되어 있다. 이승준과 함께 한 3년 동안 삼성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이상민은 09-10시즌 뒤 은퇴했고, 10-11시즌이 끝난 뒤 프랜차이즈 스타 강혁이 팀을 옮겼다. 팀 컬러도 철저한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런앤건으로 바뀌었다. 이상민은 차기 시즌, 은퇴 2년여 만에 코치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승준이 떠난다.

“나이가 많다보니 어린 선수들과 어울리기는 힘듭니다. (이)규섭이 형, (이)상민이 형, (강)혁이 형, 또 (이)정석이가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줬습니다. 이 팀에서 더 뛰고 싶습니다. 정든 팀을 떠나려니 슬프네요(sad)."

정든 팀을 떠나야하는 지금은 이승준에게 가장 힘든 때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전태풍(32·전주KCC)은 지난 시즌 도중 혼혈 드래프트로 들어온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3년 뒤 강제 이적’ 규정에 대해 “차별 아니냐”라고 불쾌감을 드러낸 바 있다. 전태풍은 이승준과도 절친한 사이. 현재 KBL에서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는 선수는 이승준, 전태풍, 문태영, 문태종까지 총 4명이다. 같은 혼혈 선수지만, 이동준과 김민수(30·서울SK)는 먼저 귀화 절차를 밟은 후 국내 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KBL에 입성했기 때문에 국내 선수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그 제도 덕분에 내가 한국에서 뛸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도 한국인이 됐는데, 한국 선수들과 같은 규정에서 뛸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네요…”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밝게 인터뷰에 임하던 그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조금씩 말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승준은 잠시 심경을 가다듬은 뒤에야 “삼성을 떠나야하는 지금이 한국에 온 뒤 가장 힘든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좋지 않은 성적은 스포츠 선수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팀 동료들, 또 트레이너나 통역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맺어온 관계를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예정된 이별이기에, 그래서 더 괴롭습니다.”

이승준은 다음 시즌 서울 SK, 원주 동부, 울산 모비스, 고양 오리온스 등 네 팀 중 한 팀에서 뛰게 된다. 그는 “스몰포워드부터 센터까지, 어떤 팀의 어느 위치에서도 뛸 수 있다. 팀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승준이 가장 좋아하는 NBA 선수는 케빈 가넷이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첫 시즌에는 센터를 맡아서 몸을 불렸어요. 지난 시즌에는 파워포워드로 뛰게 되어 좀더 가벼운 몸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포지션은 스몰포워드입니다. NBA에서도 더크 노비츠키(댈러스)나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상 보스턴)처럼 외곽슛을 잘 쏘는 선수를 좋아합니다. 케빈 가넷(보스턴)이나 하킴 올라주원(은퇴), 팀 던컨(샌안토니오) 같은 스타일의 빅맨을 관찰하게 된 것은 국내에 온 이후입니다.”

팀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맞춰 얼마든지 자신의 체형과 포지션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이승준의 설명이었다.

이승준은 ‘가고 싶은 팀이 어디냐’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아끼면서도 “런앤건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 이승준은 김승현이 삼성으로 온 이후 부쩍 경기력이 좋아졌다. 성적은 좋지 못했지만, 김승현-이승준-아이라 클라크로 이어지는 ‘쇼타임 썬더스’는 막강한 관중 동원력을 보였다. 그 중심에는 이승준의 화려한 덩크가 있었다. 이승준은 “덩크는 많이 했는데, 이기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많이 졌다”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쾌감보다는, 경기 전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게 좋다”라고 했다.

“첫 시즌에 하승진(Big Ha)의 머리 위로 덩크를 했었습니다. 내 인생에서 한 덩크 중 가장 큰 선수에게 한 것입니다. 올시즌 김동욱을 앞에 두고 했던 덩크도 기억납니다.”

이승준은 김동욱에게 성공시킨 인유어페이스를 가장 기억에 남는 덩크 중 하나로 꼽았다. 고양 |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 @k1isonecut



이승준은 시즌이 끝난 뒤 중국농구리그(CBA)로 진출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이승준은 "애초부터 CBA에 진출할 생각은 없었다"며 “에이전트로부터 여러 가지 제안 중 하나를 들어본 것일 뿐, 중국행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중국행 루머를 부인했다.

“에이전트에게 온 여러 제안 중 하나일 뿐입니다. 중국 외에 카타르나 푸에르토리코에서도 제안이 왔습니다. 돈이 제 인생의 전부가 아니죠. 저는 지금 어머니의 나라에서 동생과 함께 있습니다. 또 아직 한국은 올림픽에 나갈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혼혈 선수인 제게 국가대표는 너무나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승준은 인터뷰가 끝난 뒤 “이제 가빈을 응원하러 간다”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함께 STC에서 생활하는 남자배구 삼성화재의 가빈 슈미트, 여자농구 삼성생명의 김한별(킴벌리 로벌슨, 이상 27)과 무척 친한 사이다. 길게 길렀던 머리가 짧아진 것도 ‘머리 좀 짧게 잘라라’라고 가빈이 잔소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가빈과 머리스타일이 비슷해졌다.

팀 관계자는 “예전에 가빈의 유니폼을 입고 마트에 갔다가 사람들이 가빈인줄 알고 사인을 요청했다. 키가 비슷하게 크니까 당연히 가빈인줄 알았던 것 같다”라는 굴욕담을 전했다.

용인 |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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