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임상수 감독 인터뷰 “돈 많은 사람도 돈 없는 사람도 위엄 지켰으면… ”

입력 2012-05-0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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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으로 칸 영화제 본선 두번째 진출한 임상수 감독

임상수 감독은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함께 진출한 홍상수 감독이 화제에 오르자 “담담한 안정감과 고상한 위로를 주는 작품을 만든다. 저예산으로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진짜 예술가”라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임상수 감독(50)의 영화는 뒷맛이 유쾌하지 않다. 그 대신 죽비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음장 같은 충격이 있다.

17일 개봉하는 ‘돈의 맛’도 그렇게 ‘센’ 이야기를 담았다. 재벌가 노(老)회장의 딸 백금옥(윤여정)은 돈 때문에 그와 결혼한 윤 회장(백윤식)이 필리핀 출신 하녀와 바람난 것을 알게 된다. 백금옥은 집사 격인 젊은 주영작(김강우)과 뜨거운 관계를 맺는데 금옥의 딸 윤나미(김효진)도 주영작을 탐한다. 치정과 돈을 둘러싼 음모가 난무한다.

‘돈의 맛’은 16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프랑스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임 감독의 작품으로는 2010년 ‘하녀’에 이어 두 번째다. 임 감독은 ‘눈물’(2000년)이 베를린영화제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유럽 영화제의 구애를 받고 있다. ‘바람난 가족’은 2003년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 ‘그때 그 사람들’은 2004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본보와 단독으로 만난 그는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어느 때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으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쳤다.

“명백하게 저는 후보자 중 ‘언더도그(underdog·약자)’입니다. 후보에 오른 작품들을 보면 내가 어떻게 들어갔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켄 로치, 미하엘 하네케, 크리스티안 문지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의 작품이 4편이나 된다. 레오 카락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알랭 레네 감독도 상에 도전한다.

하지만 임 감독은 수상 욕심을 숨기지는 않았다. “2004년 하네케 감독이 감독상을 타고도 화를 내더군요. ‘왜 그랑프리가 아니냐’는 뜻이죠. 경쟁에 오른 분들은 에고(자아)가 엄청 셉니다. 칸에 초청받는 분들은 (그랑프리를 못타면) 매년 불쾌해해요. 이번에 내가 ‘확’ 상을 타 버리면 수십 년 불쾌하지 않아도 되죠. 하하.”

칸이 그를 두 번씩이나 후보에 올린, 스스로 생각하는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자신 있게 답했다. “유럽 영화는 1960년대 누벨바그나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이런 영화들은 뭔가 모호하고 새롭지 않아요. 그런데 제 영화는 전통적인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고수하죠. 제 작품에는 모호함이 없어요.” 그는 ‘돈의 맛’ 시나리오를 쓰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곁에 두고 참고했다고 말했다.

‘돈의 맛’ 포스터.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등 그의 작품은 권력과 돈 있는 사람들의 치부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지적에) 동의하지 않아요. ‘바람난 가족’은 자유로운 사회를 성취하고도 중산층이 겪는 공허함을 담았죠. ‘그때 그 사람들’을 박정희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면 일차원적 평가예요. 한국이 민주화했지만 독립적인 개인을 성취하지 못하는 문제가 ‘죽어버린 우상’ 때문은 아닌가를 묻는 작품이죠.”

그는 ‘하녀’와 ‘돈의 맛’의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재벌 문제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봅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 그들에게서 돈을 받는 사람들이 위엄 있는 개인으로 살았으면 하는 이야기입니다.”

‘임상수표’ 영화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센 장면들의 의도를 물었다. “찍을 때 촬영감독과 ‘너무 과하지 않은가’ ‘센세이셔널리즘에 기대는 것은 아닌가’를 자체 검열합니다. ‘니들이 진정 돈의 맛을 알아? 임상수가 보여줄게’라고 말하길 기대하는 관객이 있다면 (세게) 보여줘야죠.”

윤여정은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 ‘바람난 가족’ 등 그의 작품에 단골로 출연해 왔다. “묘한 연기자죠. 저는 열정적인 연기보다 미니멀한 연기를 좋아해요. 미니멀한 연기는 그가 최고죠. 윤여정 씨는 뭔가 ‘안’ 하려는 게 장점이에요.”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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