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이 만난 사람] 안익수 감독 “질식수비? 세련된 축구로 가는 과정”

입력 2012-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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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안익수 감독은 이론과 실전 모두에서 강한 전략가다. 안 감독은 스타 없는 부산을 이끌며 끈끈한 수비축구로 K리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스포츠동아DB

5년 걸린 박사논문 덕에 ‘경기분석’ 큰 도움
재미없다고? 다른색깔 인정해야 K리그 발전
우린 스쿼드 얇아 선수 스스로 상황변화 대처
나도 다이내믹하고 감응 주는 축구 하고싶다


기자의 책상 책꽂이에는 검은 색 표지의 논문이 꽂혀있다. 색깔이나 크기 때문에 도드라진다. 제목은 ‘K-리그와 EPL을 통한 실제경기시간과 경기 외 시간에 나타나는 축구 경기력 특성에 관한 연구’다. 논문의 저자는 부산 아이파크 안익수(47) 감독. 2010년 발표된 박사학위 논문이다. 목차만 훑어봐도 K리그를 얼마나 꼼꼼하게 분석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론의 치밀함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이론을 어떻게 그라운드에 수놓느냐다. 지난 해 부산 지휘봉을 잡은 안 감독은 이론과 실전 모두에서 강했다. 그는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령탑 중 한명이다. 부산은 13라운드까지 9경기 연속 무패(6승3무) 포함 6승5무2패로 6위를 마크했다. ‘질식수비’라는 용어도 만들어냈다. 네티즌들은 부산 축구를 ‘안철수(안익수 감독의 철벽 수비축구)’라 부른다. 논란도 있었다. 재미없다는 게 그 이유다. 안 감독에게 부산 축구에 대해 물었다.


-논문이 현장에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나.

“논문을 쓰는데 5년 걸렸다. 그 과정에서 분석을 많이 했던 것이 도움이 된다. 프리미어리그와 K리그를 비디오로 많이 봤다. 경기 보는 시야가 많이 좋아졌다.”


-시즌 초반 잘 나가고 있는데.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우리는 다른 팀에 비해 스쿼드가 두껍지 못하다. 관리를 잘 해야만 기복 없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많다. 지금 잘 나간다고 해서 도취되어선 안 된다.”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선수들의 성숙된 마인드가 중요하다. 지도자는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을 선수 본인이 이해되고 판단해야한다. 변화는 선수의 몫이다.”


-비판도 받는 것 같다. ‘질식수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부산은 올 시즌 13경기에서 7실점하며 16개 구단 중 최소 실점을 기록 중이다)

“어떤 캐릭터든지 관심의 대상이 됐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기분 나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 가질 세련된 축구를 위한 하나의 캐릭터라고 봐 달라. 우리의 목표는 또 다른 것이니깐.”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질식수비를 했나.

“의도된 것은 아니다. 전북이나 서울 포항 등 강팀들과 경기를 하는 와중에 나왔다. 상대적으로 약 팀이다 보니 수비적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우린 정상적인 플레이를 했다. 약 팀이어서 자연스럽게 우리 골문 쪽으로 내려서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선수가 영입됐고, 부상 선수도 나와 조직력에 문제가 있었다. 이것도 (질식수비의) 원인 중 하나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팀마다의 색깔을 존중해야한다. 모두가 획일적이면 발전이 더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비진을 운용하고 있나.

“우린 운용의 묘를 살릴 수 있는 스쿼드가 아니다. 스리백과 포백을 혼용해서 쓴다. 획일적인 지시는 없다. 경기 상황은 의도한 대로 안 된다. 상대의 전술이 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판단해서 해야 한다. 그런 판단하는 부분을 많이 훈련시킨다. 어린 선수들이라 더 잘 흡수한다.”


-공격은 어떤 식으로 운용하나.

“상황 인지 능력을 키운다. 예를 들면 상대 수비수의 상황 변화를 인지하고 판단하도록 시킨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선수 스스로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들 체력에는 문제없나.

“체력 걱정 때문에 훈련 량이 많다. 우린 부상 선수가 생기면 대체 요원이 부족해 전력 누수가 크다. 그런 부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훈련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혹독하지는 않다. 주어진 시간동안 집중력을 강조한다. 1주일에 하루만 오전오후 훈련을 하고 그 외에는 한번만 훈련한다. 훈련동안에는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승점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

“단기 승부를 위한 준비는 아니다. 성장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훈련이나 자기 관리, 마인드 등이 성숙해졌다. 선수와 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아울러 다이나믹하고 스토리가 있는 축구, 팬들에게 감응을 줄 수 있는 그런 축구를 해보고 싶다.”


-올 시즌 목표는.

“순위에 대한 부분은 열망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매 순간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면 따라오는 것이다. 쫓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만하지 않으면 원하는 순위는 오게 돼 있다.”

기자가 2004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럽축구선수권(유로 2004)을 취재할 때 가장 기피했던 경기는 그리스 경기였다. 독일 출신의 오토 레하겔 감독이 이끄는 그리스는 극단적인 수비 전술로 상대 공격을 막아냈다. 탄탄한 조직력, 강력한 태클 등이 인상적이었지만 솔직히 보는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는 싸움에서 이겼다. 유로 2004를 제패하면서 그리스 신화를 완성했다. 20일 끝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첼시(잉글랜드)는 ‘선 수비, 후 역습’의 철저한 수비전술을 전개하며 바이에른 뮌헨(독일)을 꺾고 창단 이후 처음으로 정상에 섰다. 그게 바로 축구다.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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