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승회가 30일 잠실 KIA전 7회 무사 1루서 김원섭에게 투수 앞 번트안타를 허용한 뒤 허탈한 듯 모자를 벗고 있다. 그러나 곧 무사 1·2루 위기를 무사히 막고 7이닝 무실점 호투를 이어갔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동료들이 붙여준 ‘가면’ 별명처럼…
상승세 KIA 상대 7이닝 무실점 매직
야구의 매력 중 하나는 다른 종목에 비해 늦깎이 스타가 더 많이 탄생한다는 점이다. 20대 초반 실력으로 많은 것이 판가름 나는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노력의 결실이 더 풍성한 곳이 녹색 다이아몬드다.
1회말 2번타자부터 6회초 1번타자까지, 정확히 18명이었다. 최근 상승세를 타던 KIA 타선이었지만 그 사이 단 1명도 1루를 밟지 못했다. 마운드를 지킨 투수는 류현진(한화)도, 윤석민(KIA)도 아니었다. 두산의 5선발 김승회(31)였다.
김승회. 지난해까지 프로 9년간 통산 12승19패, 방어율 4.35. 지극히 평범한 투수였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그 어떤 에이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완벽한 투구였다.
김승회는 30일 잠실 KIA전에 선발 등판해 1회말 이용규에게 2루수 강습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7회말 선두타자인 김선빈에게 중전안타를 맞을 때까지 단 한번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았다. 18연속타자 아웃. 2회부터 6회까지 모두 삼자범퇴. 2만3000여명의 잠실 관중은 김승회의 역투에 숨을 죽였다.
김승회는 2003년 탐라대를 졸업하고 신인 드래프트 2차 5번, 전체 40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없었다. 1군보다는 2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2005년 당시 팀 선배 박명환(LG)에게 슬라이더를 배우며 조금씩 좋은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아득히 멀리 있었다. 그러나 꾹 참고 노력했고, 올 시즌 임시로 선발을 맡았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김승회는 묵묵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6차례 선발 등판에서 2승2패, 방어율 3.79를 기록하며 김선우가 부진에 빠진 두산 선발진에서 소금 같은 역할을 했다. 그동안 동료들은 김승회의 별명을 ‘가면’으로 지어줬다. 덕아웃에선 한 없이 순한 표정, 그러나 마운드에만 올라가면 흔들림 없이 강인한 얼굴로 공을 던졌다. 9년 인고의 세월이 묻어있는 공이었다.
그리고 30일 잠실에서 김승회는 최고 144km의 묵직한 공에 낙차 큰 포크볼로 범타를 유도하며 7이닝 동안 볼넷 없이 3안타만 허용하고 3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두산에 김승회의 동기는 손시헌, 이종욱 등이 있다. 모두 무명에서 국가대표로 성장한 친구들이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날만큼은 김승회도 오직 땀으로 정상에 오른 친구들처럼 환하게 빛났다.
잠실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