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도네츠크의 돈바스 아레나에 몰린 5만여 팬은 열광적이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스페인과 강호 포르투갈의 유로 2012 4강전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기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킬러’를 양 팀 모두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스페인은 이날 정통 스트라이커인 알바로 네그레도(세비야)를 선발 출전시켰다. 다비드 비야(바르셀로나·바르사)의 부상 공백으로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자 ‘제로 톱’ ‘가짜 공격수’를 투입하는 전술을 쓰던 비센테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의 고민이 엿보인 대목이다. 강호 포르투갈을 잡기 위해선 한 방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네그레도를 투입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결국 후반 8분 세스크 파브레가스(바르사)로 바꿔 그동안 썼던 ‘제로 톱’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다. 파브레가스가 들어가면서 미드필드의 주도권은 좀 더 잡을 수 있었지만 꼭 필요한 골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스페인은 연장 전반 13분 호르디 알바(발렌시아)가 왼쪽을 파고든 뒤 띄워준 볼을 골 지역 왼쪽을 달려들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바르사)가 찬 볼이 가장 골에 근접했다. 하지만 상대 골키퍼 후이 파트리시우(스포르팅 리스본)의 선방에 걸려 아쉬움을 남겼다.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다. 선발 출전한 중앙 공격수 우구 알메이다(베식타쉬)나 후반에 교체 투입된 넬송 올리베이라(벤피카) 모두 한 방이 부족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와 루이스 나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좌우에서 흔들어 줄 때까지만 해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후반 막판부터 체력이 떨어지면서는 주도권을 스페인에 내줬다. ‘전문 키커’ 호날두는 페널티박스 인근에서 프리킥을 너무 높게 차는 바람에 상대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선수비 후공격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미드필드부터 적극적인 압박을 펼치며 스페인의 패싱플레이를 무력화시키려는 포르투갈의 노력은 돋보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스페인에 골을 내줬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날 경기는 한국 축구에도 큰 교훈을 준다. 스트라이커 부재를 해결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강호들도 힘든 경기를 한다는 점이다. 세계 최고의 유소년 시스템을 자랑하는 스페인도 비야를 이어줄 차세대 스트라이커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한국은 늘 ‘골잡이 부재’로 대표팀 사령탑들이 고민하고 있다. 브라질 공격수들이 K리그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토종 스트라이커를 키우는 노력이 절실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스페인 이케르 카시야스(레알 마드리드)의 승부차기 선방은 돋보였다. 선축 스페인의 첫 번째 키커 사비 알론소(레알 마드리드)가 찬 볼이 파트리시우에게 걸렸을 때 여느 골키퍼라면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카시야스는 포르투갈의 주앙 모티뉴(포르투)의 첫 킥을 막아내며 후속 키커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승부차기 승이라 무승부로 기록돼 개인 통산 A매치 100승은 무산됐지만 카시야스는 스페인의 확실한 수호신 역할을 했다. ―도네츠크에서
허정무 전 축구대표팀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