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어떻게 되든 6개월만 더 버텨줬으면 좋겠어요. 제 몸도 마음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같았다. 전투를 앞둔 장수 같기도 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둔 올 초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말에는 절박함과 비장함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김천 서부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유도를 시켰다. 몸이 작고 약해서였다. 유도를 하면서 체력은 좋아졌지만 체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 김기용 씨(59)는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157cm밖에 안 됐다. 또래 선수 중 가장 작았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에게 '땅콩'으로 불렸던 김재범은 동지상고(포항)에 진학한 뒤 키가 쑥쑥 자랐다. 고3 때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유도 메카' 용인대에 입학했다.
용인대는 정글이었다. 그와 같은 체급의 선배나 동료들은 모두 국가대표급이었다. 김천에서 한 가닥 했다는 실력으로 맞설 수준이 아니었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유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김재범은 성실 그 자체예요. 훈련을 할 때도 항상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가장 늦게 마치죠. 지난해 12월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대회에 나갔다가 왼쪽 어깨를 또 다쳤어요. 코칭스태프가 말렸지만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라며 출전을 고집했어요. 매트 위에서는 적토마 같다니까요." 마사회 최용신 코치의 말이다. 그는 김재범이 유독 부상을 많이 당하는 것도 의욕이 앞서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동료들이 주말에 외박을 나갈 때도 김재범은 용인대 체육관에서 땀을 흘렸다. 집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들르는 게 고작이었다.
땀은 결실을 맺었다. 200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73kg급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 유도의 차세대 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기쁨과 함께 시련도 찾아왔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에서 이 체급의 절대강자였던 이원희(31·용인대 교수)에게 져 한동안 방황했던 그는 왕기춘(24·한국마사회)까지 같은 체급에 등장하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체급을 올렸다.
ㅍ 키(178cm)가 커서 대회 때마다 10kg 가까이 감량해야 했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주변에서는 "이원희와 왕기춘이 두려워 체급을 바꿨다"고 수군거렸다. 베이징에서 우승했다면 불식됐을 얘기였지만 4년 전 금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마음고생이 이어졌고 그는 더 강해져야 했다. 다치는 일도 늘었다.
"누나 두 명 밑에서 막내로 자라 그런지 성격이 사근사근해요. 말수도 적은 편은 아니죠. 그런데 유도 얘기는 잘 안 해요. 동료들을 통해 부상 소식을 들을 정도니까요. 아프다는 얘기를 부모 앞에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프다고 안 해도 아픈 자식을 보고 마음이 편할 부모는 없다. 아버지 김 씨는 "다칠 때마다 내가 유도를 괜히 시켰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워낙 아픈 데가 많아 금메달은 꿈도 안 꿨다. 동메달만 따면 욕은 안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걱정했지만 아들은 그런 몸을 이끌고 유도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아경기·아시아선수권)을 달성했다. 금메달의 대가는 달콤했다. 소속팀 마사회는 포상금 2억 원을 주기로 했다. 2008년 최민호에 이어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김천시는 올 9월 '최민호·김재범 올림픽제패기념 중고유도대회'를 열기로 했다.
갈망했던 금메달을 목에 건 채 그는 말했다. "4년 전에는 죽기 살기로 해서 졌다. 이번에는 죽기로 해 이겼다."
사즉필생(死則必生·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을 온몸으로 보여준 27세 청년은 유도 영웅이 돼 살아남았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 같았다. 전투를 앞둔 장수 같기도 했다. 런던 올림픽을 앞둔 올 초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말에는 절박함과 비장함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김천 서부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유도를 시켰다. 몸이 작고 약해서였다. 유도를 하면서 체력은 좋아졌지만 체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 김기용 씨(59)는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157cm밖에 안 됐다. 또래 선수 중 가장 작았다"고 회고했다.
친구들에게 '땅콩'으로 불렸던 김재범은 동지상고(포항)에 진학한 뒤 키가 쑥쑥 자랐다. 고3 때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정상에 올랐고 '유도 메카' 용인대에 입학했다.
용인대는 정글이었다. 그와 같은 체급의 선배나 동료들은 모두 국가대표급이었다. 김천에서 한 가닥 했다는 실력으로 맞설 수준이 아니었다. 좌절의 연속이었고 유도를 그만둘 생각도 했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때부터였다.
"김재범은 성실 그 자체예요. 훈련을 할 때도 항상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고 가장 늦게 마치죠. 지난해 12월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대회에 나갔다가 왼쪽 어깨를 또 다쳤어요. 코칭스태프가 말렸지만 '실전이 최고의 훈련'이라며 출전을 고집했어요. 매트 위에서는 적토마 같다니까요." 마사회 최용신 코치의 말이다. 그는 김재범이 유독 부상을 많이 당하는 것도 의욕이 앞서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동료들이 주말에 외박을 나갈 때도 김재범은 용인대 체육관에서 땀을 흘렸다. 집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들르는 게 고작이었다.
땀은 결실을 맺었다. 2004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73kg급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 유도의 차세대 주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기쁨과 함께 시련도 찾아왔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대표 선발전에서 이 체급의 절대강자였던 이원희(31·용인대 교수)에게 져 한동안 방황했던 그는 왕기춘(24·한국마사회)까지 같은 체급에 등장하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10개월 앞두고 체급을 올렸다.
ㅍ 키(178cm)가 커서 대회 때마다 10kg 가까이 감량해야 했던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였지만 주변에서는 "이원희와 왕기춘이 두려워 체급을 바꿨다"고 수군거렸다. 베이징에서 우승했다면 불식됐을 얘기였지만 4년 전 금메달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마음고생이 이어졌고 그는 더 강해져야 했다. 다치는 일도 늘었다.
"누나 두 명 밑에서 막내로 자라 그런지 성격이 사근사근해요. 말수도 적은 편은 아니죠. 그런데 유도 얘기는 잘 안 해요. 동료들을 통해 부상 소식을 들을 정도니까요. 아프다는 얘기를 부모 앞에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아프다고 안 해도 아픈 자식을 보고 마음이 편할 부모는 없다. 아버지 김 씨는 "다칠 때마다 내가 유도를 괜히 시켰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워낙 아픈 데가 많아 금메달은 꿈도 안 꿨다. 동메달만 따면 욕은 안 먹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걱정했지만 아들은 그런 몸을 이끌고 유도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아경기·아시아선수권)을 달성했다. 금메달의 대가는 달콤했다. 소속팀 마사회는 포상금 2억 원을 주기로 했다. 2008년 최민호에 이어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김천시는 올 9월 '최민호·김재범 올림픽제패기념 중고유도대회'를 열기로 했다.
갈망했던 금메달을 목에 건 채 그는 말했다. "4년 전에는 죽기 살기로 해서 졌다. 이번에는 죽기로 해 이겼다."
사즉필생(死則必生·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 것이다)을 온몸으로 보여준 27세 청년은 유도 영웅이 돼 살아남았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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