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012]비밀병기 이범영 - 지동원, 벤치 지키던 그들이 일냈다

입력 2012-08-0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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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올림픽 첫 4강 신화
벤치워머(벤치를 따뜻하게 데우는 사람·후보 선수)가 일을 냈다. 벤치를 데우다 출전 기회를 얻어 이번에는 축구 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한국이 5일 열린 런던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축구 종가이자 홈팀인 영국을 꺾고 사상 첫 4강 진출을 이뤄낸 데는 벤치워머 2명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한 명은 선제골을 넣었다. 또 한 명은 진땀나는 승부차기에서 상대 슛을 막아냈다.


○ “승부차기에는 자신 있었다”

올림픽 대표팀의 후보 골키퍼 이범영(부산)은 영국전 후반 17분에 부상당한 주전 골키퍼 정성룡(수원)과 교체돼 투입됐다. 런던 올림픽 본선 무대 첫 출전이다. 그는 와일드카드로 올림픽 대표팀에 합류한 베테랑 수문장 정성룡에게 밀려 조별리그에서 3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1-1 상황에서 투입된 그는 실점 없이 후반을 마쳤다. 연장전 30분 동안도 골문을 잘 지켜냈다. 이제 남은 건 승부차기다.

승부차기에는 자신이 있었다. 키 199cm, 몸무게 94kg의 당당한 체격인 그가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골문 앞에 버티고 서 있으면 키커들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이날 그가 골문 앞에서 껑충껑충 뛴 것에 대해서도 “몸을 더 크게 보이게 해 키커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골키퍼를 하면서 수없이 치른 승부차기에서 진 게 세 번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영국과의 승부차기가 시작되기 전 그는 이번에는 잘해서 2년 전의 아픔을 털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범영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준결승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 때 연장전 종료 직전에 김승규와 교체 투입됐다. 당시 아시아경기 대표팀 사령탑이던 홍명보 감독이 승부차기에 대비해 그를 기용한 것이다.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골을 허용했다. 승부차기는 해보지도 못하고 졌다.

그는 이날 영국의 다섯 번째 키커 대니얼 스터리지(첼시)의 슛을 막아내 승부차기 5-4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슈팅의 방향을 미리 읽었던 건 아니다. 그냥 본능에 몸을 맡겼다고 한다. 경기가 끝나고 그는 “2년 전 아시아경기 때 생각이 나 눈물이 났다”고 했다.

○ 첫 선발 출전, 선제골로 보답

지동원(선덜랜드)은 이번 올림픽에서 조별리그를 치르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같은 유럽 무대에서 뛰는 박주영(아스널) 기성용(셀틱)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이 거의 풀타임을 뛰는 동안 자신은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조별리그에서 한 번도 선발로 나서지 못했다. 조별리그 3경기를 합쳐 49분을 뛴 게 전부다.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영국과의 8강전에 지동원을 처음으로 선발 출전시켰다. 홍 감독은 “동원이가 이곳(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면서 아주 심한 마음고생을 했었다. 분명히 뭔가 보여주지 못한 게 있을 것 같았다. 영국 선수들과의 경기 경험이 많기 때문에 뭔가 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동원은 전반 29분 페널티지역 왼쪽 모서리 부근에서 벼락같은 왼발 슛으로 골망을 흔들며 홍 감독의 기대를 채웠다. “후반과 연장전 때 좋은 기회가 몇 번 더 있었다. 그런 기회를 살리지 못해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지동원은 이날 한국의 유일한 골을 터뜨렸는데도 더 많은 골을 넣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선발로 나선 첫 경기에서 골맛을 보며 자신감을 얻은 그는 “메달을 따러 영국에 왔다. 남은 두 경기에서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카디프=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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