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의 런던 리포트] 독종 아들,V 위해 왼발잡이로 바꿨다

입력 2012-08-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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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훈(오른쪽). 동아일보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이대훈부친이 말한 이대훈의 비밀

“타고난 오른발잡이, 중2 슬럼프 후
1년간 왼쪽만 사용…왼발잡이 변신”

KISS “후천적으로 바꾸기 쉽지 않다”


곱상한 외모와 수줍은 미소. 그러나 이대훈(20·용인대)의 내면에는 후천적 노력으로 오른발잡이에서 왼발잡이로 변신한 독기가 서려있다.

이대훈은 9일(한국시간) 엑셀 사우스 아레나에서 열린 2012런던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세계선수권 2연속 우승자인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스페인)에게 8-17로 패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를 마친 그는 자신을 선수의 길로 이끈 태권도관장 출신의 아버지 이주열(42) 씨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런던으로 떠나기 전, 대표팀 코칭스태프조차 알지 못하는 아들의 비밀 한 가지를 털어놓았다.


○머리 하나 큰 형들을 상대로도 거침없이 하이킥

9일 경기 내내 이대훈은 왼발을 뒤로 두고 스텝을 밟았다. 태권도계에서 이대훈은 공인된 왼발잡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원래 (이)대훈이는 오른발잡이였다”고 밝혔다. 이대훈은 태권도 가족의 일원이다. 아버지는 이대훈의 한성중·고 선배이고, 형 이정훈(23) 씨도 같은 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5세 때 아버지의 도장에서 태권도를 시작한 이대훈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4∼6학년이 나가는 대회에서 머리 하나 더 큰 형들을 상대로 싸움닭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대성할 아들의 모습을 예감하고, “뒷바라지는 내가 1등을 할 테니, 너도 운동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말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이대훈은 설에 차례를 지내고도 발차기를 날렸고, 가족과 여름휴가를 가서는 콘도 베란다에서 개인운동을 했다.


○생애 첫 슬럼프와 왼발잡이로의 변신

중2 때 첫 시련이 찾아왔다. 이대훈은 중1 시절, 중 2·3학년 형들을 제치고 전관왕을 차지했다. 그러다 중2 때는 전국대회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사실 보통의 중2 선수라면 그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대훈에게는 충격이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식사 중인 아들이 계속 밥을 흘렸다. 가만히 살펴보니 아들은 숟가락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 “남들을 이기기 위해선 왼발도 잘 써야 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무조건 왼쪽을 쓰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이 기특하기만 했다. 그렇게 왼발을 단련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중3이 된 이대훈은 정말 양쪽 발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다시 한번 전국무대를 평정했다. 그 후 이대훈은 스텝을 밟을 때 주로 왼발을 뒤에 둔다. 그래서 왼발잡이로 알려지게 됐다.


○왼발잡이 변신은 과학적으로도 극히 드문 사례

현재 왼발잡이와 오른발잡이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왼발(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해 있다는 것과 의식적인 왼발(손)의 사용은 우뇌의 기능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검증된 사실이다. 우뇌는 운동선수들에게 중요한 ‘직관적 판단’과 연관이 깊다. 그래서 일부 스포츠과학자들은 “왼손잡이 선수들이 더 창조적인 플레이를 펼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대훈은 순간적 센스가 뛰어나고 또래들에 비해 노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역시 의식적으로 왼발잡이로 바꾼 그의 노력 덕일지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체육과학연구원(KISS) 정동식 박사의 설명처럼 “일단 오른발잡이가 되면, 후천적인 노력으로 왼발잡이로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대훈은?

▲생년월일=1992년 2월 5일
▲키·몸무게=182cm·61kg
▲출신교=중계초∼한성중∼한성고∼용인대
▲수상경력=2010광저우아시안게임 63kg급 금, 2011경주세계선수권 63kg급 금, 2011런던올림픽 세계선발전 58kg급 3위, 2012아시아선수권 58kg급 금, 2012런던올림픽 58kg급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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