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손연재의 못다 한 이야기’ 러, 성적순 줄세워 훈련… 맨뒤 벗어나려 독기 품고 덤벼

입력 2012-08-1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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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엔 대열 중간 차지… 실전 같았던 英 모의 올림픽
자신감-정신력 훨씬 강해져
런던 올림픽 주요 메달리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인 14일 인천국제공항.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메달리스트를 능가하는 인기를 과시한 선수가 있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첫 결선 무대에 진출해 5위에 오른 손연재(18·세종고)다. 올림픽이 끝났지만 식을 줄 모르는 ‘손연재 열풍’의 원동력과 올림픽 뒷이야기들을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 독기

‘얼굴만 예쁜 줄 알았는데…. 실력까지 갖추다니.’

런던 올림픽을 지켜본 팬들은 손연재의 원숙한 연기에 놀랐다. 손연재는 상위 10명이 겨루는 결선 진출을 1차 목표로 했지만 톱5에 진입하며 한국 리듬체조의 위상을 높였다. 손연재의 급성장은 러시아 대표팀의 노보고르스크 훈련소에서 보낸 2년이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식 성적 지상주의는 손연재를 자극했다.

손연재는 처음 러시아에 여장을 푼 2010년 여름 주눅이 들었단다. 러시아 코치들은 세계 각국에서 온 선수들을 성적순으로 1열 횡대로 세운 뒤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맨 마지막에 서야 했다. 세계 최고 훈련소에서 손연재는 아시아 변방에서 온 무명 선수 취급을 받았다. 대열의 선두는 ‘리듬체조 여왕’ 예브게니야 카나예바, 다리야 콘다코바(이상 러시아) 등이 점령했다. 러시아식 선수 관리는 손연재의 독기를 자극했다. 손연재는 1년 남짓 지난 뒤부터는 대열 중간 지점을 차지했다. 손연재는 “처음에는 홀대와 외로움에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들의 훈련을 따라가기만 해도 실력이 느는 게 느껴졌다”고 회상했다.


○ 자신감

런던 올림픽에서 보여준 손연재의 강인한 정신력도 화제다. 리듬체조 슈즈가 벗겨지는 불운과 실수 속에서도 투혼을 펼친 곤봉 연기 장면은 폐막 후까지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손연재의 강심장은 다양한 실전 경험에서 나왔다. 특히 올림픽 개막 전 영국 셰필드에서 펼친 모의 올림픽이 큰 도움이 됐다. ‘리듬체조계의 대모’ 이리나 비네르 러시아 리듬체조협회장은 셰필드 주민 3000여 명을 초청해 가상 경기를 치르게 했다. 카나예바 등 세계적 스타의 등장 속에 분위기는 올림픽 못지않게 뜨거웠다. 손연재는 “당시 영국 관중 앞에서 연기를 펼친 뒤 자신감이 더해졌다”고 회상했다.


○ 사랑

손연재의 경기력 뒤에는 어머니 윤현숙 씨의 사랑이 있었다. 윤 씨는 리듬체조 경기가 열리기 나흘 전인 5일 영국 런던에 도착했지만 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연재가 10일 예선 6위로 결선 진출을 확정하자 선수단 숙소를 찾아 딸과 깜짝 상봉을 했다. 1차 목표를 달성한 딸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엄마를 발견하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린 손연재는 “엄마를 보고 난 뒤 마음이 편해졌다. 결선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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